결백보다는 세심한 배려가 아름답다 어느 산부인과 의사가 겪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한 부부가 불임 여부를 알기위해 그 의사를 찾아왔답니다. 오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은 그 부부는, 왜 아이가 생기지 않는지 이유를 알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검사를 해보니 남자 쪽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정자에 문제가 있어서 불임 진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결과를 알고 그 남편은 무척이나 상심했습니다. 여자 쪽의 문제도 아닌, 자신의 결함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충격을 받아, 의사가 조심스레 인공수정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화를 내듯 병원을 나서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1 년 후. 그 부부는 다정스레 그 병원을 다시 찾아와 그 의사에게 인공수정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의사는 무척이나 궁금했답니다. 도대체 1 년 사이에 그 남편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인공수정이란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그토록 예민하고 날카롭게 나왔던 그 남편이, 이제와서는 오히려 먼저 인공수정을 하자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았겠어요? 그 이유는 이러했답니다. 아내의 태도때문이었지요. 비록 남편의 결함으로 불임이라는 진단은 받았지만, 아내는 반대로 자신의 결함때문에 아이를 갖지 못한다고 거짓으로 사람들에게 말한 거에요. 시부모님을 비롯하여 주변 친지나 궁금해하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결함으로 아이를 갖지 못한다고 공공연히 알린거랍니다. 아내는 자신이 정상임을 인정받는 일보다, 남편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하는 일에 더 마음을 쓴 것입니다. 아이란 남자쪽 결함이건, 여자쪽 결함이건 둘 중에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절대 생길 수 없습니다. 또 실제로 그 결함의 빈도도 남자, 여자 모두 50 대 50, 반 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에서 여자에게 결함이 있다고 했을 때, 남자의 결함때와 똑같은 시선으로 대해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멸시에다, 마치 흠이 있는 여자라는 인식등의, 사회적으로 얼마나 불리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까. 아직도 아이를 낳지 못해 이혼당하는 여자가 한 둘이 아닙니다. 그만큼 여자에게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여자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아내는 그 불리한 대접을 자처하고 나서서, 남편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마음이 변하게 되었고, 결국 그가 먼저 인공수정에 대한 제의를 하게 되었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침내 그 부부는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의사는 그 아내의 따뜻하고 착한 마음씨가 지극하여, 오래도록 그 부부의 경우를 기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참사랑의 표현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자칫 오해하기 쉽습니다. 좋은 순간에, 또는 어려움이 닥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표현하기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이에도 어떤 위기가 크거나 작게 닥쳐올 수 있는데, 그때도 의연하게 사랑을 지켜가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 자신도 성공적인 사랑만을 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인생을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니까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 진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사랑이 실패하는 이유는 너무도 간단한 거였어요. 상대방이 자신의 이기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라는 거죠. 그 여자가 자신은 정상인데, 남편때문에 그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거라고, 남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한들 조금도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기가 죽거나, 창피함을 느껴, 스스로에 대한 삶의 태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는 커녕, 정상적이고 화목한 결혼생활을 계속 할 수있다는 보장은 불투명합니다. 그 여자는 그것이 두려웠을 것이고, 아마도 그 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했을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질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부모가 반대하네, 사람은 좋은데 장래성이 불투명해서..... 어쩌구 하며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 사랑을 깨는 사람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습니까? 아이는 결혼한 부부에게 있어 너무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갖기 위해 결혼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정말로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라면, 아이가 생길 수 없다고 해서 그 사랑을 깨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종족보존의 욕구가 사람의 본능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람이 대를 안 잇는다고 해서 인류의 후대가 완전히 끊기는 것도 아니지않습니까? 아직도 아이 문제로 이혼을 하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물론 아이를 정말로 갖고 싶어하는 마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주체가 서지 않는 한, 성급한 性의 결합은 치졸합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결혼이어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이가 없다고 깨질 행복과 사랑이라면, 애초에 미리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과연 진정한 사랑이었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난은 견딜 수 있지만, 자존심마저 버리고 사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있는데로 자존심이 짓밟혀진다면, 그에게 더 이상의 사랑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부간의 사랑에서 무엇이 과연 중요하고 우선인지를 깨닫고, 현명하게 처신한 그 아내의 사랑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 어떤 남자라도 그런 사랑을 받았다면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나 역시도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언제나 내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그 여인에게서 한가지 배운 것은 있습니다. 남편은 내 이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내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함께 해야하는, 남 아닌 바로 나의 다른 모습이라는 거죠. 말로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보다는, 매일 일상으로 부딪히는 그의 모든 것을, 언제나 말없이 포용하는 것이 더욱 보기좋을 거란 생각도 해 봅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말로하는 사랑보다는 그렇게 마음과 느낌으로 조용히 전해지는 사랑에 오히려 그 무게를 더해주고 싶습니다.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