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사망 시 디지털 기록을 어떻게 처리 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20

두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것은 ...


BY 쟈스민 2002-05-03

빗소리에 새벽잠을 설쳤는지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연다.

오늘은 아이들이 체험학습 가는 날!!

서둘러 오밀조밀 예쁜 도시락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운다.

서로 자신이 마음에 드는 가방을 갖고 가겠노라고 티격태격하는 아이들에게
일장연설을 하면서 그 어느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철저한 중립을 지키려 애쓴다.

두런두런 준비물을 챙겨들고 아이들은 나름대로 기대에 찬 얼굴로
잔뜩 찌푸려 비내리는 하늘을 원망이라도 하는지 베란다를 들락거린다.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면서도
학교의 공식적인 행사날에 미리 기상예보를 확인하지도 않고서 날짜를 잡는 것인지...
아님 나쁜 기후조건도 체험학습에 도움을 주는 것인지...
나의 툴툴거림과 함께 아침식탁은 차려진다.

따뜻한 된장국과, 한입크기로 조그맣게 만 김밥 ...

역시 우리 엄마 김밥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쳐들고
두눈 동그랗게 웃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서
바쁜 아침에도 난 잠깐동안의 행복감에 젖는다.

24시 김밤전문점도 있다지만,
엄마의 정성만 할까 싶어 약간의 번거로움에도 늘 손수 만든다.
그러다 보니 이젠 제법 실력이 날로 늘어 오늘처럼 아이들의 찬사를 듣기도 한다.

아침을 거르고 온 사무실 식구들에게 두어줄 싸다 주니 맛나게 먹는다.

며칠전부터 퇴근을 하면 간단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파트 앞 학교 운동장에서 매일 저녁마다 에어로빅을 하러 간다.

워낙 운동에는 소질도 없고, 무용에도 취미가 없는 나이지만
하루종일 가만히 앉아서 일하면 좀이 쑤시는적이 좀 많은게 아니다.

스스로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기에
만사 제쳐두고 일단은 하루에 40분씩 에어로빅 동작을 따라한다.
어설픈 몸동작으로 어찌어찌 따라하다 보면 40분이란 시간은 금새 가버리고 이마엔 구슬땀이 흐른다.
상큼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또한 내겐 색다른 즐거움이다.

게재에 이웃에 사는 엄마들의 얼굴도 익히고, 나이드신 연배의 아주머니들과 인사도 나눈다.
그분들은 나를 보고 아즉은 젊은엄마라며 잘할수 있을꺼라 격려도 해주신다.

평소에 얼마나 운동을 하지 않고 지냈으면 며칠동안 에어로빅 좀 했다고
다리가 뻐근하고, 배도 당기고 온통 피곤한 사람처럼 곤한 잠에 빠져들기도 하며
운동에 익숙지 않은 뻣뻣한 관절에 놀라고,
도무지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버걱거리는 뱃살에 또 놀란다.

정신없이 저녁밥을 앉혀두고 그렇게 운동을 다녀와 집안을 둘러보면
정말 난장판이 따로 없다.

어떨때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하는지 선뜻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앉아 있기도 하고, 간간히 아이들에게 좀 치우라고 잔소리도 한다.

어제도 사무실에서 감사가 있는 날이라 하루종일 다리도 아프고,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그러했기에
저녁운동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내심 고민하다가
이러다 아예 가기 싫어질까봐서 지레 겁먹고 아무생각없이 운동장으로 나갔다.

땀을 흘리고난뒤 샤워를 마치니 손끗하나 까닥하기 싫어지는데
아직도 할일이 남아 있었기에 아이들이 다 잠든시각까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나의 발걸음은 그때까지도 종종거림을 그치질 못한다.

가정과 직장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늘 마음만 앞서고 몸은 뒤쳐져 피곤하다.
살이 찐다고 고민하지만, 그래도 이만한 덩치라도 되니
그 일련의 일들을 다 하고 살아지는 것이지 내심 흐믓한 미소로
늘어가는 중량에 한눈을 질끔 감아버릴때도 있다.

가랑비 솔솔 내리는 아침
오늘은 나를 태워다 주고 차를 쓰겠다는 남편은 아까부터 1층에서 기다리는데 ...
나는 여전히 어지러이 너질러진 집안의 물건들 제자리를 찾아주면서
시계바늘의 빠름만 탓한다.

주위의 맞벌이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상하게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적이 많다.
그럴때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음으로 대신하곤 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몸이 말하는 언어에 충실할 수 있는 자유를
집안에만 들어오면 갖고 있는 남편과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되는일이 없다며 쫓아다니며
스스로 자유를 주지 못하고 사는 아내 ...

집안은 다소 깔끔할지는 모르지만 그런 아내는 피로가 채 가시기도전에
일터로 나가야 할때가 부지기수다.

가끔씩은 뒤죽박죽인 집안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이 말하는 언어에 귀기울이며 푹 쉬고 싶을때가 왜 없을까마는
엄마, 아내라는 자리는
늘 어떤 책임감을 갖게 하나보다.

아직까지도 모든걸 해치우고 나서야 내 몸을 돌아보는 것을 보면 ...

무엇보다 지금 자신이 열심히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며,
개인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하여서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가정에서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더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걸
먹일 수 있을까 늘 그런 궁리를 하며 사는 엄마... 그리고 아내...
직장에서는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직장인으로...
내 모습을 그려 두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게 현실이다.

나의 내면에서 외쳐대는 소리에 귀 기울여 가며
자신의 역할을 다 잘해내려 하는것도
어찌보면 지나친 욕심일수 있을꺼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그냥 내가 할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뿐
무리한 욕심은 더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일기도 한다.

10년 혹은 20년후에
지난 삶을 돌아보며 정말 열심히 잘 살았노라고 ...
말할수 있을만큼만 지금 그리 살고 싶다.

두마리 토끼를 잡는 일도 좋겠지만,
자신의 건강과, 그리고 가족들의 사랑과 건강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할수 있는
지혜로운 여자로 나이들어 갈수 있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