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신문을 읽고 있는데,
간단히 외출준비를 마친 아내가,
"나, 장보러 갔다올께"하며 나선다.
"저녁 메뉴가 뭐야?"
"응, 양식으로 할거야."
"오랫만에 잘 먹겠네..."
몇년 만에 미국으로 출장 온 아내의 대학동기가
일을 끝내고 우리집에서 하루 묵고 간다 했다.
아내는 그동안 갈고닦은 음식솜씨로
친구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이것저것 준비를 시작했다.
신문을 다 읽고, 아내와 약속한대로
아랫방을 치우고 있는데, 아내가 부른다.
"자갸, 하다보니까,
깜빡 잊고 몇가지 안 사온 게 있는데,
지금 가서 좀 사다 줘!"
내미는 종이조각을 보니,
'양파, 우유,...'등 대여섯 가지가 적혀있었다.
"그래! 방 치우던 거 마저 치우고 갈께."
"시간이 없어...지금 가야되는데..."
"알았어!"하고 자동차 열쇠를 찾는데,
마침 친구집에 놀러갔던 아들 녀석이 들어선다.
"음~~ 맛있는 냄새...엄마, 뭐해?"
"저녁에 손님이 오셔!
"너, 마침 잘 왔다. 지금 시장에 가서
이것 좀 사 와라."
"네!"하며 쪽지를 들여다 보던 녀석이 묻는다.
"엄마! 양~~파가 뭐지?"
지 누이들 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주말에 한국학교를 몇년 다닌 덕택에
한글을 대강 읽을줄 아는 녀석은
가끔 확실한 뜻을 몰라 헤맨다.
"오니온!"
"아, 그래! 어니언(onion)!" (본토 발음임. ㅋㅋㅋ)
엄마의 심부름으로 장에 다녀온
아들의 꾸러미를 열어보던 아내가
배추를 꺼내들며 아들에게 묻는다.
"이거, 웬 배추니?"
"엄마가 쪽지에 썼잖아!"
"그럴리가? 어디 보자!"
쪽지를 보던 아내가 나를 보며 풋~하고 웃었다.
호기심이 나 쪽지를 받아 보니,
'......버터..'라고 써 있었는데,
바쁘게 흘려 쓰느라
얼핏보면 '배추'라고 읽을 수도 있음직했고,
한글에 익숙치 않은 녀석이
'배추'라고 읽은 것도 다행이었다.
어이가 없어 같이 웃으며 아들녀석을 다시 보내는데,
나가면서 그 녀석이 하는 말,
"궁시렁...궁시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