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동생의 병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걸 알고
직장에 사표를 냈다. 간병인을 써볼까도 생각했지만 간병인비가 만만치않음을 알고 많은 갈등을 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오히려 돈보다는 이러다 혹시 동생이 떠나기라도 한다면 나자신에게 남을 많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내린 결론이었다.
월급도 없고 토요일 일요일도 없는 병원생활이었다.
아침 일찍 아이들 학교 보내고 부천에서 여의도 성모병원까지 매일 출퇴근을 했다. 직장은 아니었지만 동생을 돌보며 참으로 많은 인생공부를 했다. 생사를 헤메며 무균실과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는 일.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생활이었다.
그렇게 병간호를 하던중 동생은 시월말 유언한마디 남기지 않은체 하늘나라로 갔다.
젊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것도 남이 아니고 바로 나의 동생이 . 주치의의 말에 따라 마음의 준비는 계속 하고 있었지만 6개월이 지나고 있는 지금도 동생이 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게 동생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겨울을 맞이했다.
춥기도 했고, 사는게 뭔가하는 허무감과 우울증이 나를 꼼짝없이 집에 묶어 놓았다.
그러던중 이렇게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봄이 되면서 새로운 일을 찾아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벼룩시장, 교차로, 알림방, 가로수 정보지라는 정보지는 다 갖다놓고 하루종일 그것을 훑어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내 나이 마흔살.
경리직. 나이 제한에서 다 걸린다. 주부가능이라는 문구가 있어서 전화를 해보면 대부분 35세 이하의 미시주부를 원한다.
판매직. 역시 좀 괜찮은 곳은 나이제한에서 다 짤리고 식품매장 같은 곳에는 취업이 가능한데 보통 시간이 밤10시까지로 2교대 근무를 하는 곳이 많았다.
이 곳 역시 사춘기에 접어든 큰 아들과 외로움을 많이 타는 작은 아들때문에 나한테는 맞는 조건이 못된다.
영업직. 텔레마케터. 보통 10시에서 5시까지 우리 주부들에게는 시간으로는 굉장히 좋은데 문제는 실적이다.
보험을 해볼까 생각하다 성격상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고 남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나 부담주기 싫어하는 내 성격엔 맞지를 않는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산직란으로 눈을 돌린다.
여기 저기 조건이 괜찮은 곳에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놓고 전화를 해본다. 대부분이 잔업을 원한다.
정규직은 하루일당 보통 16,000원*30일=480,000+만근시 만근수당30,000정도. 식사제공하는 곳 있고 밥값을 2500원씩 돈으로 계산하는 곳도 있단다. (주부들은 이 돈도 아끼려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는 담당자의 말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저녁을 먹고 잔업을 하면 1.5배를 수당으로 달아준다고 했다.
일당직은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보통 20,000원에서 25,000원정도.
(잔업은 안해도 되는 대신에 보너스, 상여, 퇴직금은 없단다)
요거는 내가 좀 해볼만 하네 생각하며 전화를 해보면 교통이 너무 불편하고 ...
그렇다면 운동도 하고 돈도 버는 배달직을 한번 해볼까.
다른 사람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할게 뭐가 있겠어 .
근데 그것도 마땅치가 않다. 새벽에 하는 일은 일단 아이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보내는 데 만만치가 않다.
아이구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네.
그렇다면 주방일이나 써빙을 한번 해볼까.
그래 파트타임. 점심시간에 잠깐 가서 하고 오는 그게 좋겠다.
어. 이거 시간이 좋네. 10시부터 4시까지. 월 55만원. 한달에 두번휴일. 조건이 썩 맞는 것은 아니지만 일요일에 안 쉬면 어때.
용기를 내서 옷을 대강 갈아입고 한살이라고 젊어보이기위해 정성껏 화장을 한다. 근데 도착하니 잠깐 사이에 벌써 다른사람이 와서 면담을 하며 채용이 확정된 듯 하다. 주인이 미안하다며 전화번호나 하나 주고 가라고 한다. 아. 씁쓸한 맛이라니.
학교 급식. 그래 오래전에 따놓은 조리사 자격증을 좀 써먹어볼까.
초등학교 급식은 없고, 힘든 고등학교나 구내식당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전엔 거의 정규직으로 써서 보너스는 물론 아이들 학자금까지 지급이 되었다는데 대형 외식업체들이 각 구내식당에 보급이 되면서 일하는 여건은 형편없어졌다.
말이 조리사이지 막노동이나 마찬가지이면서 거의가 다 계약직으로 채용이 된다. 월급도 거의 시급제로 쓰기 때문에 일하는 양에 비해서 월급은 형편없다.
집에서 아이 돌보기. 남편이 절대 반대다. 남의 애 데려다 잘못되면 어떡할려고 그러냐고.
와 이젠 미치겠다. 도대체 주부가 설 자리가 없다.
이거 저거 다 따지다보니 나에게 맞는 일. 내가 원하는 직업은 없다.
눈 높이를 낮추자. 아줌마임을 인정하자. 생각하며 다시 정보지를 들여다본다.
경리구함. 주부가능. 전화를 해보니 내 나이도 괜찮단다.
일단 가보자. 걸어서 15분정도의 거리.
노란 쟈켓을 꺼내입고 구두를 신고 또깍거리며 거리로 나선다.
가정에 안주한 안주인이 아닌 사회의 일원으로 끼고 싶어 .
가보니 조그마한 사무실에 책상 몇개 쇼파 . 퀵써비스 사무실.
전화 잘받아주면 된다고 말한다.
상냥하면 또 한 상냥하는 이 행우니.
9시에 출근해서 6시퇴근. 공휴일은 다 쉬고 토요일은 한시 퇴근.
월급여는 65만원. 중식은 제공해준단다.
옛날에 비하면 엄청나게 자존심 상하는 급여지만 집에서 좀 쉬다보니 이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교통비 안들어도 되고 식대 안들어도 되고.
아가씨들은 와서 있을것 같지도 않은 사무실.
아줌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것 같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하기로 한 나는 마음이 설렌다.
다시 내가 나갈곳이 생겼다는 사실에 신이난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해서 하다보면 좋은 일이 생기리라.
와 근데 65만원씩 월급이 생기면 이걸로 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