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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삶의 이야기(23)


BY 영광댁 2001-04-09




작년 가을에 세계 불꽃 잔치를 하였던 자리에서 어제는 예술 연 날리기 대회가 있었다.
코 앞에 63빌딩이 있고 강기슭에 여의나루가 있었고.
새로 핀 꽃들이 자잘하게 정답고 밝고 선명한 빛깔들이 끝없이 순일하고
실패를 잡고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내리꼿는 햇빛입자속에
바람의 수선거림이 한없이 조용했다는 것이 흠이였다면...
연 앞에서 제일 큰 흠이었다.

아들은 비닐로 만들어진 꼬리 긴 가오리연을 들었고 이제 땅에서 막 솟아나기 시작하는
풀들을 밝으며 달리기를 해서 하늘 높이 연을 띄웠다.
땅에선 바람이 없고 밝은 햇빛에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곤혹스러워 하는데
하늘 높은 곳에서 연은 꼬리와 지느러미를 여유롭게 흔들며 살아있는 생물처럼 하늘거린다.
연은 어린아들의 손에 걸린 하나의 끈에 제 목숨을 달고 있으면서 내 눈엔 저토록 자유롭다.
하늘을 나는 운명이라니...
순간 땅 속에서 흙을 파 헤치며 햇빛 아래 눈감은 두더지보담 낫네. 혼잣말을 해본다.

축제의 자리가 강가라는 것도 썩 마음에 들었다.
지난번 무심코 강줄기를 따라 노들길을 걸어왔다가 연 축제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액막이로 정월 대보름즈음에만 하던 연날리기가 모든 생물들이 싹을 돋우는 성대한 봄에
넓은 땅 넓은 하늘에서 축제 다운 축제의 모습으로 서성일 수 있겠구나 .. 여러날 동안
오늘을 기다리기도 했다. 하릴없는 사람처럼...

대회나 연 전시장이나 아직은 협소하다.
처음이라는 말처럼 낯설고 어색하고 순박한 것도 잘 갖추지 못한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여러 색으로 물들지 않아서 좋았다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다른 모든 일들이 그랬던 것처럼 횟수를 거듭하면 발디딜 틈이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연날리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 연은 날리지도 못할 것이다. 하늘로 향해 올라간
연은 가느다란 실에 연결이 되는데 사람의 인연처럼 얽히고 설키면 못사는 게 연인데
고독한 영혼하나 인연 끊은 연처럼 사람의 땅에서 끈도 없는데 사람의 무리에 섞어
제 마음대로 날아가지 못하고 하늘 가장자리거나 그 어느 공간에서 떠 있는 것들을
간간히 보고 있다면... 실은 얼마나 좋은가...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지만 분명 연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속 인연줄은 보이지도 않는 것이 그토록 오랜시간 사람들을 붙들고 엉켜 있는 있는 것을 사랑이라는 말보다는 인연이라고 한다지만.
사랑이라는 연줄하나 가지지 않겠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는 길이란다. 강물을 보고
또 혼잣말이다.

연중에서 방패연이 으뜸이라고 하는 아이아빠는 모든 연이 실하나에 상,하로만 움직이지만
방패연은 상하 좌우 연 날리는 사람의 기교에 따라 얼마든지 방향 조절을 할 수 있다며
같이 못가 본 것을 못내 서운해 했다. 교회에 가느라 동행하지 못한 딸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서운해 했지만 몇시간이나마 하늘 높이 연을 띄워보고 햇빛아래 앉아 있어 보고
연동호회 사람들로 구성된 선수들의 방패연 싸움이며 , 하늘로 올라간 화투연, 접을려면 하루가 걸린다는 550개의 연 , 용연, 고등학교 과학반 아이들이 참석한 세모꼴연.등을 보고
강가를 걸어 개나리 꽃 무더기 밑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 봄날 일요일.

종일 머리가 지끈거리더니 아직까지 연이 눈안에서 어른거리고 얼굴이 벌겋게 타올랐다.
아이하고 둘이서 하늘 높이 올라간 연을 보며 끈을 놓아버리자 의논을 하고 합의를
하였건만 연을 놓아주지 못하고 집까지 가져와 버리고 말았다.
연을 두고 왔다면 머리가 안 아플텐데... 지금까지.
대추나무에 연걸리는듯 인연들 많으면서 아들의 연을 또 들고 와 버리다니...

인연하나 또 만들어 집안으로 들어왔다.
시간이 넉넉한 어느 날 저 연을 들고 나서야지.
아이들을 동요시켜 멀리 날려 버리고 말리라.
연은 하늘 높은 곳에서 날다가 멀리 날아가 버려야 하지 않은가.
할수만 있다면 연을 날려보낼 때 연 가까운 곳에서 실을 끊었으면 좋겠다.
날아가면서 걸리지 않게 멀리 멀리 가볍게 날아가라고...

2001.04.09.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