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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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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울먹이며 동의해 달라네요.


BY 도가도 2002-04-17

이혼하자고.....


아직도 물을 대지 않은 논에는
보라빛 앉은뱅이 풀꽃이 잔디밭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한데 어울리고 싶지만,
혹 뱀이 있을까 그냥 논두렁에서 바라보고
몇개의 꽃을 꺽어 손에 쥐고,
아이들과 산들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한갖지게 걸어봅니다.
초록산이지만,
결코 한가지 색으로 통일되지 않은 나무잎 빛깔들을 감상하며,
집으로 돌아와 산보를 끝냅니다.
그리고 바카스병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꺽은 풀꽃을
아이들이 직접 꽂습니다.

산보를 다녀온 아이들은 마음이 풍요롭습니다.
이 잔정 없는 엄마를 대신해서 자연으로부터 엄마를 느낍니다.
도시의 인공자연이 아닌,
'스스로 그러한' 자연에게서 이 엄마보다도
더 자애로운 모성을 느끼는가 봅니다.

이제 슬슬 벼농사준비를 위해 물을 대기 시작한 논에서
개굴개굴이 아닌,
드륵륵 드륵륵 울어대는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분명 새끼가 아닌 큰개구리의 울음소리일진대,
경칩은 벌써 지났건만, 그동안 개구리들은 어디에 있다가,
제고향, 물논으로 돌아온걸까요?

개구리울음소리에 서서히 여름으로 가는 길목을 깨닫습니다.


오늘 시끌벅적한 학교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요란한 소풍뒤에 오는 적막이 쓸쓸합니다.
아마도 남편때문일겁니다.
어제 새벽에 전화가 왔었습니다.
남편이 기분좋게 술마셔서
기분이 좋다면서 전화 말머리를 열었습니다.
그러더니..나중엔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울면서 이혼하자고 말을 합니다.
형식적인 이혼이랍니다.
빚에 대한 짐을 자기혼자 지고 싶답니다.
그것이 나에게나 도련님,아가씨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무척 고맙다고 말하였습니다.
죽으러 가는 사람같다고 하니까,
결코 죽으러 가는게 아니랍니다.
그럼 이혼하더라도 나는 여기 하동서 계속 살수 있는거냐니까
살아도 된다 하는군요. 형식적인 이혼이기에....ㅎㅎ..다행입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는군요...
알았다고 했습니다.
ㅎㅎㅎㅎㅎㅎ
웃음이 나옵니다. 이 웃음의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이 도가도가 도가 트였나봅니다.
기가 막히다는 뜻도 조금 있는 것 같고,
그래,갈때까지 가보자 하는 뜻인 것도 같습니다.

결론이, 형식적인 이혼이 정말로 실제이혼이 될지,
혼인신고를 다시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할겁니다.
그래, 니가 하고싶은 대로 한번 다 해보고 살아보라..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뜻이 아닌, 또 남편에 의해 큰일 하나를 겪어내야 하지만,
갈때까지 다 간 것이라고 이제까지 생각해 왔건만,
아직도 험난한 갈 길이
우리부부에게 또 남아있음을 이제야 알았지만,
그래, 진자리 마른자리, 마르고 닳도록
다 겪어내보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의외로 나는 담담합니다. 약간 우울하지만 담담합니다.
묘한 쾌감같은 것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이 쾌감은 또 무슨 느낌인지 의문이 들지만,
나는 의외로 담담합니다.

남편의 말이 행동으로 옮겨지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입니다.
그는 답답하리만치 느림보 성격이니까요.
자못 그 오랜시간속에 어제 남편이 했던 말이 묻혀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나에게 또 하나의 상처를,말로써 남겼습니다.
또 하나 기분좋지 않게 기억될 상처를 나에게 주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
담담한 척 하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