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다니면서 송강 정철의 시조 한 수나 가사를 외우지 않고 졸업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송강이 우리 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높디 높은 것이다. 가사로는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
곡'이 있고 시조로 '훈민가'를 비롯한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라는 시조를 운에 맞추어서 주저리 주저리 외워댔다. 또 고등학교 시
절에는 "어버이 살아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 뿐인가 하노라."라는 시조를
외우면서 효의 의미를 되새겼다. 지금에 와서 이제는 더 이상 부모님
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낄 때는 이 시조의 교훈이
가슴에 와 닿는다.
고등학교 고전시간에는 "고전은 무조건 외우라."는 엄명에 따라서
"강호(江湖)애 병(病)이 깁퍼 ?떪?竹林)의 누엇더니..." 하면서 많이
도 외워댔다. 송강은 역시 몇백 년만에 한 번 날까 말까하는 문장가라
는 것을 느꼈다. 풍부한 고사의 인용, 절묘한 비유 등등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임을 알아차렸다.
송강의 일생을 크게 삼분하면 관료(官僚)의 생활,은거(隱居)의 생활,
적소(謫所)의 생활로 나눌 수 있는데,귀양지 강계에서의 일화가 세인
에 회자된다. 대시인의 삶에서 은거와 귀양의 생활이 없었다면 작품
이 남았을까? 그래서 대인(大人)의삶은 그 어디에서 사느냐가 문제되
지 않는다.
송강 정철은 정치적으로 부침을 거듭하며 가슴에 쌓인 울분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래서 그는 주색으로 그 화를 풀었던 모양이다. 한때 이
이가 그에게 "제발 술을 끊도록 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버릇을 없애
라"고 충고했을 정도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 취
기를 바탕으로 빼어난 산문과 절편의 시들을 뽑아낼 수 있었는지도 모
른다. 중국의 이백이 술에 묻혀 살면서 뛰어난 한시를 뽑아냈듯이 말
이다.
송강 정철(鄭澈)이 선조(宣祖) 때 강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달은 밝고 오동잎 지는 소리 스산한 밤, 귀뚜라미의 처량한 울음 소리
가 귀양살이하는 정철(鄭澈)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다. 적막
한 처소에서 홀로 취해 누워 있는 그에게 나지막한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하얀 학처럼
고운 한 여인이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들어섰다.
진옥(眞玉)이란 이름의 기생이었다. 술상을 마주 하고 앉아 잔을 기울
이던 정철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진옥(眞玉)에게 말했다.
"진옥(眞玉)아, 내가 시조 한 수(首)를 먼저 읊을테니 그대는 이
노래에 화답을 하거라"
기생 진옥(眞玉)은 가야금을 뜯고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목청을
한껏 가다듬어 노래를 불렀다.
"옥(玉)이 옥(玉)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 하니 진옥(眞玉)일시 분명하다
내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이 시조를 현대말로 풀이하면 대강 이런 뜻이다.
"옥(玉)이라 옥(玉)이라 하기에 번옥(燔玉)(돌가루를 구워 만든 가짜
옥)으로만 여겼더니/이제야 자세히 보니 참옥(眞玉, 진짜 옥)임에 틀
림 없구나/나에게 살송곳(여기서는 남성의 심볼을 의미) 있으니 그 옥
(玉)을 뚫어볼까 하노라"
정철(鄭澈)의 시조 창(唱)이 끝나자 진옥(眞玉)이 지체없이 받았다.
"철(鐵)이 철(鐵)이라커늘 섭철(鐵)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 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이 시조를 요즘 말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쇠라 쇠라 하기에 섭철(錫鐵)(잡다한 쇳가루가 섞인 순수하지 못한
쇠)로만 여겼더니/이제야 자세히 보니 정철(正鐵)(잡것이 안 섞인 쇠-
鄭澈을 빗댐)임에 틀림없구나/나에게 골풀무(쇠를 달구는 대장간의
풀무로 여기서는 여성의 심볼을 의미) 있으니 그 쇠를 녹여볼까 하노
라"
두 남녀 정철(鄭澈)과 진옥(眞玉)은 각기 상대편의 이름을 빗대어
정철은 자신의 '살송곳'으로 진옥을 뚫겠다고 하고 있고, 진옥은 쇠를
녹이는 '골풀무'로 정철을 녹이겠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큰 일은 벌어
지겠다. 두 사람이 각기 자신들의 상징을 '살송곳'과 '골풀무'로 고도
의 은유법을 동원해서 상대방을 협박(?)하는 수법이 고단수는 고단수
다.
그 다음 장면은 안봐도 비디오다. 여기 어떤 님이 잘 쓰는 버젼으로
"뼈와 살이 타는 밤"이 되지않았을까 하는 상상이...(ㅎㅎㅎ)
이렇게 첫 밤을 보내고 정철과 진옥의 강계생활은 시작되었다. 귀양
지의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왔을 때 부인 안씨는 진옥을 데려오도
록 권했고,송강도 진옥에게 청했으나 진옥은 끝내 거절하고 강계에서
살았다고 한다. 얼마나 깔끔한 처신인가.
삼공(三公)을 지낸 대정치가, 일세의 문장가 정철이 귀양 생활을 하면
서 진옥(眞玉)같은 예술을 아는 여인이 없었으면 얼마나 쓸쓸했을까?
송강(松江), 그가 귀양지에서 나눈 사랑, 그것은 육애(肉愛)만이 아니
라 뜻이 통하는 예술인의 깊고 깊은 교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