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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아줌마! 할머니의 정체성!


BY 남상순 2000-10-31

퇴출아줌마! 할머니의 정체성!

아줌마닷컴에 어제 할머니 아지트가 새로 생겼다.
"젊은 할머니 모여라!" 라는 제목의 아지트이다.
물론 내가 만들었다. "아줌마 닷컴에 할머니 아지트"라?
이게 어울리는 일인가? 아리송했다.

여자의 일생이 어찌 되는가?
아기(중성)-계집아이(여성)-처녀(여성)-아줌마(여성)-할머니(중성)
그렇다면 분명히 아줌마에서 퇴출된 인류가 할머니인가?

처녀가 아줌마 되던날 그리도 생소하고 당혹스러웠는데
아직은 아줌마라는 착각에서 혼미한 할머니들의 존재는 무엇일까?
분명한 정체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지트 이름을 짓느라 갸웃둥 했다.
할머니란 말을 앞세우면 어쩐지 아줌마에서 퇴출당할 기분이고
할머니 자신들이 쉽게 할머니됨을 폭로하고 싶을까?
할머니야 이미 늙었다는 말이지만 마음이 젊으면 젊은 할머니가 될것이다.
요즘은 조혼추세라서 실제로 젊은 할머니들도 많질 않은가?
그럴듯 했다 "젊은 할머니들 모여라!"
모여라! 하면 긴박감과 동심이 살아오지 않는가?
그리고 부제로 "손주자랑 며느리자랑" 이라고 붙였다.

아지트를 만들자마자 "나이 50에 할머니 딱지가 떡 붙어버렸노라"는
젊은 할머니가 들어오셨고,
"늙은 할머니는 안되나요?" 하면서 가입하신 할머니도 계셨다.
"할머니란 단어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가입하신 분도 계시고
이미 수준높은 홈페이지를 갖고계신 64세의 할머니도 가입하셨다.
벌써 7명의 할머니들이 가입했고
다섯분이 글을 올리며 친분을 나누고 있다.

자식보다 훨씬 손주가 귀엽고 이쁘다며
손주자랑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돈내고 해야 한다는 손주자랑을 마음??하게 되었다.
"내 손주는 모두 천재"라고 자랑하신다.
나야말로 돈내고라고 자랑하고 싶은 심정인게 사실이다.

내가 쓰고 있는 할미가 쓰는 육아일기도 공개했다.
아줌마닷컴 아지트중에 50대 모임이 제일 높은 연령대인것 같은데
거기에서 연결고리가 될 모임터가 될 것이다.

할머니! 누가 할머니가 될줄 알고 나이를 먹더란 말인가?
할머니만 되면 난 세상 살 재미가 다 사라지고
죽을날만 기다리는 불쌍한 존재가 되는 줄 알았다.
변색되어 떨어져 딩구는 낙엽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은 오묘하게도 할미가 되는 행복을 주셨다.
귀여운 손주들을 통해서.
또 한 번 자식키울 때의 기쁨과 감격을 되새김하게 해주셨다.

'손주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있다.
그만큼 손주 보기가 힘겹다는 말이다.
이쁘니까 정신없지만 몸이 말을 안듣는거다.

손주랑 노는 동안에 적당한 운동은 된다.
손주 수준으로 걷고 기고 움직이고 지껄이고 웃질 않는가?
적당한 엔돌핀이 솟는다.

손주를 할머니에게 맡기는건 불효지만
손주를 할머니 앞에 두는 것은 효도가 된다.

노화를 받아들이고 늙음을 인정하는 지혜가 대수인가?
할머니란 호칭에 자부심을 갖고 익숙해지고
멋쟁이 할머니가 되는것 아닐까?

할머니! 그 낯선이름!
이제는 기분 좋은 이름이다.
머리에 내린 흰눈도 부끄럽지 않고
손주를 업고 운동장을 어슬렁 거려도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거울에 비친 나의 할머니됨을 수긍하느라
한동안 맘고생한적도 있지만.
노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는것 아닌가?

싱싱한 아줌마들은 알고 있을까?
시간이 마침내 할머니를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꽃잎이 떨어진다고 장미포기는 울부짖지 않는 법
노추가 두려울 것은 없다.

베이컨은 '고목은 불때기에 좋고
오래묵은 술이 마시기에 좋으며, 오랜 친구는
믿을 수 있고, 노련한 작가의 글은 읽을만 하다'고 말했다.

'神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최선의 것을 최후에 주신다'고 內村 鑑三은 말했다.

괴로움과 슬픔의 정이 솟구쳐 말라붙은 흔적처럼
험루가 흐르는 노쇠한 손잔등을 자신만만하게
손주에게 내어밀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