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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조기유학을 온 어떤 튀기엄마의 단상


BY 강신주 2002-04-06

저는 재미교포입니다. 결혼을 한 뒤에 미국에 눌러앉게 된 튀기 엄마라고 소개하는 게 옳겠네요. 프랑스말을 쓰는 남편과 한국어를 쓰는 엄마와의 사이에서 미국에서 출생하여 자라는 저의 아이들은 튀기란 말이 딱 맞습니다. 미국에서도 튀는 케이스이니까요.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저희 가족은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쳐주기 위해 '역조기유학'을 왔습니다. 네살배기 딸 '꼴렛', 일곱살짜리 아들 '에밀'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것과 한국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국제결혼한 여성으로서 볼 때 우리 나라도 많이 좋아졌더군요. 남편과 단 둘이 길을 가면 가끔씩 따가운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미군과 동두천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일까요. 그러나 꼴렛과 에밀과 같이 네 식구가 다닐 때, 한국 사람들의 시선은 너무도 따뜻했습니다. 제일 걱정한 것이 애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나 였는데, 모두들 사랑이 담긴 관심을 주셔서 아주 다행이었습니다. 관심이 너무 지나쳐서 힘드는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요..한편으로는 제가 백인이랑 결혼했기 때문에 이정도 대접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유색인 외국인들과 결혼한 분들이 이 땅에서 살면서 받는 푸대접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더군요.

저는 노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노는 이야기를 좀 하고 싶네요. 사람의 관계가 끈끈하지 않은 미국에서는 애들을 사람과 놀리는 일이 큰 일입니다. 엄마들이 전화번호 교환해서 애들 놀릴 날짜 시간 약속을 하고, 그 시간에 맞춰가서 잘 놀고, 너무 폐가 되지 않게 나오고...그렇게 형식이 살아 인간관계를 많이 지배하지요. 한국도 점점 미국화 되어간다고 하던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어린 아이들이 자연스레 부디끼는 사람에게서 받는 애정과 관심, 그리고 교육적 자극이 많은 것 같아요. 애들의 말초신경까지 빠릇빠릇 세워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어 주는 곳인 것 같습니다. 한국 아이들은 미국애들에 비해서 정말 똘똘합니다. 어리숙한 저의 애들도 한국 다녀갈 때마다 좀 똘똘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해, 저의 아이들에게서 가장 큰 경험은 대중탕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첫째인 에밀이 '엄마, 왜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다 벗고 있어?" 하더군요. 눈치가 빠른 꼴렛은 목욕탕 안을 두리번 거리면서 도대체 여기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살피더니, 왠 할머니까 비누질 하고 물을 ?? 뿌리는 모습을 보더니 그대로, 즉, 할머니의 구부정한 포즈로, 물을 뿌려가며 몸을 씻더군요. 몸에서 때가 나오는 순간, 에밀은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엄마, 내 껍질을 벗기면 어떻게해?!" 저는 아이들을 이리 저리 안고 부비면서, 이태리 타월로 난생 처음 애들의 때를 밀면서 한국 엄마로서의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정상적인 미국 엄마가 1년동안 자녀에게 줄 스킨쉽을, 저는 대중탕에서 단 한시간만에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한국 어머니들, 자녀들한테 대중탕 같이 가는 것 만으로도 좋은 EQ교육을 했다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네요.

저는 우리 아파트 촌 입구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에 아이들과 정기적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미국 엄마들이 고심하면서 공원, 맥도날드, 버거킹,놀이터를 전전하면서 애들을 놀리는 오후 시간 말이에요. 저는 그 시간에 저는 천원짜리 몇장 들고 시장에 갑니다. 살 것도 없으면서. 이마트 수준의 수퍼마켓만 있는 미국에서 구획 정리가 확실한 쇼핑센터에 익숙한 저희 애들은 시장에 가면 정신이 없습니다. 길가까지 물건이 흘러나온 신발가게, 그릇 가게, 야채 행상, 돼지 머리가 웃고 있는 순대집, 수족관의 오징어랑 (금방 죽음으로 향할 기구한 운명의 물고기들), 지글지글 끓는 기름에 꽈배기가 튀겨져 설탕옷을 입는 드라마틱한 순간들, 엄마손에 이끌려 이 가게 저 가게를 전전하는 또래 아이들에 눈이 팔려 입이 헤--벌어져 돌아다니지요. (왜 사람이 열중하면 입이 헤--벌어질까? 여자가 마스카라 칠할 때처럼..) 저는 시장 산책 마지막 무렵에 "돈을 풀어" 꽈배기 하나씩을 사서 아이들에게 선심을 씁니다. (애들은 경외하는 엄마 동지! 감격 폭발직전의 눈으로 감지덕지 받아 들고 쫓아 오지요) 저는 마치 디즈니 랜드를 구경시켜 준 부모마냥, 뭔가 대단한 것 해줬다 으시대며 걸어가고.(참고로, 저는 미국에서 디즈니랜드에서 25분 거리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 한번도 데리고가지 않았답니다. 애들을 돈벌레로 만들기 쉽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하고, 돈이 아깝기도 해서지요)

한국에서는 엄마가 선심쓰기가 참 좋아요. 말 잘들으면 선물로 "큰 버스" 태워주니까요. 속으로 애들이 미국의 빨간 밴을 그리워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이제까지 버스만 태워주면 아쉬운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더라구요. 집의 밴 보다 버스가 큰 것도 좋지만, 아이들도 저도 좋아하는 것은 제가 운전을 할 필요가 없으니 두 녀석과 한 자리에 꼭 붙어앉아 가는 거에요. 그렇게 껴안고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고, 여러 사람이 같이 타는 것도 좋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풍경들도 너무너무 재미있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미국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길의 모습도, 건물의 모습도 다 똑같고, 길에 걸어다니는 사람도 구경하기 힘든 곳이니까..


한국이 좁지요. 연속극 보면 잘살고 이쁜 사람들은 큰 차 몰고, 큰 집 앞에 서고, 그 차들이 가는 서울 길은 막히지도 않고 쭉쭉 빠지고 그러던데, 실제 살려면 정말 많이 부대끼고 살게 되더군요. 전철이나 버스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냥 길거리를 걸을 때도 사람, 사람, 사람... 거기다가 밤에는 온 거리가 반짝거리는 간판, 간판, 간판. 줄줄이 이어선 차들의 소음.. 그래서 피곤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과격해지고 한다지만, 애들한테는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한 곳인지요. 차별없이 사람이라면 다 좋아하는 순수한 어린이들에게 길거리에, 상가에, 집에, 학교에 사람, 사람, 사람이 들끓는 게 얼마나 신나겠어요. 마치 큰 축제라도 벌어진 양...미국에서 남편과 저는 사람구경 시켜주려는 원대한 목적으로 돈내고 들어가는 시장에 가곤 했답니다. 라스베가스도 번쩍거리는 것,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시켜주려고 갔었지요. 그런데 한국 도시의 밤거리는 라스베가스를 무색케 할 정도랍니다.

남편은 한국에 올 때마다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데 있다가 미국 가면 애들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겠냐"라는 걱정입니다. 저도 온지 몇달이 안되어 벌써 이런 축제의 거리에서 축제가 끝난 뒤의 거리마냥 썰렁한 미국으로 곳 돌아갈 것을 걱정합니다. 미국에 가면 좋은 것도 많지 자위하면서, 그리고 그곳 실상에서 가장 긍정적이 면을 보고 살리라 마음을 먹습니다. 여기 한국에서 에밀, 꼴렛과 저의 삶이 한국이란 곳이 주는 여러가지 중에서 좋은 부분을 찾아 감사하고 살았듯이 살아야겠다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의 시장, 목욕탕, 약수터, 길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 떡볶이 집, 파란 마을버스를 대치할 만한 것을 미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래서 아이들을 신나고 재밌게 해 줄 수 있을까 고민은 되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