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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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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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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따로 몸따로.


BY 雪里 2002-04-02



한식엔 집안의 산소를 손봐야겠다는 아버님의 말씀에
며느리인 나는 미리 내가 할 일을 찾아본다.

여러명이 먹을 수 있는 점심 준비를 해야 할것이다.

그러러면 밑반찬 준비도 미리 조금씩 하고
특히 김치를 미리 담아 그때쯤엔 알맞게 맛을 낼수 있게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엊저녁 늦게까지 알타리는 씻어 절여놓고
국물김치 거리는 씻어만 놓고 파김치는 젖국물을 뿌려놓고...

움직일 때마다 허리에서 시작되는 통증이 다리로 이어지며
나를 괴롭혀서 통증을 견딘다면서 얼굴에 주름살만 깊게 만든다.

"아직 멀었어?"
거실에 앉았다가 주방에서 나올 생각을 안하는 내게 그이는 채근을 한다.
"너무나 불공평해, 나는 아파죽겠어도 일하는데 누군 티비 보면서 같이 누워줄 사람 없다고 독촉하구..."

안방에선 어른들이 벌써 깊은 잠에 들어 계시는데 나는 피곤함을 그이에게라도 투정 해 볼양으로 말투에 갈고리를 걸어본다.

"뭘 도와 주면 되는데? 어떻게 해줄까?"
식탁 의자에 다가 앉으며 금방 모든 일을 처리해줄 수 있는 동화속 기사가 되어 하회탈 웃음을 짓는다.
아무것도 해줄수 없음을 알면서도, 옆에 있으면 거르적 거리는게 분명한데도 나는 주방에 들어와 앉아주는 그이가 싫지않다.

스스로는 물 한컵도 따라 마시지 않는게 자연스런 행동인데 그이는 많이 변하고 있다.

얌전스럽게 물주전자에 물을 보충하는것도 배우고 식사 후 반찬그릇을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을 줄도 알아가는 그이에게 나는,
"철들자 노망난다더니 자기가 그럴려나봐요."라며 반은 놀림을 섞어 늦게나마 이렇게라도 나를 도와주려 노력하는 마음에 고마와 한다.

나중에, 아주 더 많은 시간후에,
내가 만약 지금보다도 더 몸이 불편해져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고 하면 그이는 날 어떻게 할까?

돈을 많이 벌어 놓은것도 아니니 간병인을 불러 댈수도 없을것이고
다른 사람 눈도 있으니 내버려 두지는 못할텐데...
아픈 사람을 편히 보지 못하는 성격이니 옆에서 간호를 잘 해줄것 같긴하면서도 일머릴 몰라서 내속을 터쳐 내가 지레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시골 가는 길에 엄마에게 들려서 내려놓고 가라며 차에 실린 김치통을 확인시켜주는데 건성이다.
"작은거 두개는 아지트거! 빨간 큰통은 엄마꺼! "

일찍 일어나 시작한 김치담그는일을 아침 식사 전에 끝냈다.
앞치마를 두른채로 거실에 길게 눕는다.

밥 먹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 허리 펴는일.

쇼파에 계신 아버님이 쿳션을 머리 밑에 밀어 넣어 주신다.
허리 아파서 생긴 내 특권이다.
언제나 둘러 앉은 가족들 가운데 나는 누워 있는 자유를 갖는다.
돌려 눕는데도 힘들어 하는 내모습에 안스러워 하는 어른들에게
얼굴 모습 보이기 싫어서 오래도록 한가지 자세를 취하면 다리에 쥐가나서 앉아 있던 사람들을 몇배 크게 놀래켜 버리고 마는 나!

내 몸인데 내맘대로 안되는것이 짜증 스럽다.

네 집으로 나누고 나니 시작한 만큼 국물김치 양이 많지 않다.
가끔가는 아지트지만 김치는 필수니까 조금 담아놓고 친정 엄마거 조금 담고, 감기 걸렸다고 쉬어가는 시누도 조금 주고 나머진 집에 두고.

며느리 무거운거 못 든다고 아랫층 자동차 뒤에까지 내려다 놓으신 김치통들을 싣고나와 그이에게 실려 보내놓고 컴앞에 앉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사위 다녀 갔나부다. 김치통이 와 있는거 보니까. 허리 아픈데 뭐하러 내꺼가지 담느라구...."
엄마는 목소리에서 나오는 가슴아픔을 감추시느라 헛기침을 몇번 하시곤 딸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화를 끊으신다.

알을 두개나 꺼냈다며 그이에게 전화가 왔다.
암탉이 이상한 소릴 내나 잘 관찰 하라고 했다.

"꼭꼭꼭꼭.....꼭꼭꼭꼭...."
이런 소리를 암탉이 내면 알을 품겠다는 신호라 했으니 올봄엔 내 필시 병아리를 깨어 보리라.

시골에 살려면 배워야 할게 너무 많다.
그러기엔 내몸은 역부족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