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생각없는 연예인들의 주접을 보다가 짜증이 나길래 돌린 채널에는
평소 재밌게보던 '한민족리포트'가 방영되고 있었다.
미국에 사는 여자분의 이야기였는데 그분이 일하는 곳의 주소가 어디서 많이 듣던
팰리사이드파크였다.
어라라? 화면에 흐르고있는 저곳은....?
그렇다. 울엄마네 동네였던 것이다.
혹시나 뒷꼭지라도 나오지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거의 기대도 않고 있었다.
울엄마는 부모님세대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은 무학이시다.
피난때 어찌어찌 양부모님을 만나 어려운 형편을 빌미삼아(?) 그냥그렇게 살아버린것.
물론 글은 쓸수 있지만 열에 대여섯은 틀려지는 맞춤법들과,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비뚤빼뚤한 글씨체때문에 직접 작성해야하는 서류따위를 참 싫어하셨다.
무심코 지켜보던 티브이화면속에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뉴저지노인회관에서
프로그램의 주인공에게 영어레슨을 받고있었다.
카메라가 전체인원을 휘이~돌며 스쳐지나는데 거의 손톱만한 크기로 딱! 눈에 뜨이는
빨간옷의 할머니.
크...그래도 핏줄이라고 얼굴이 안보여도 필꽂히는 이 느낌이라니.
곧이어 이어지는 클로즈업 화면에는 주위의 노인네들보다 눈에띠게 단아한 모습으로
펜대를 굴리며 공부하는 할머니...바로 울엄마였다.
그래, 요즘 애들처럼 화상챗을 하지않는 이상 얼굴보기는 불가능한 이 상황에서
평생의 한이던 공부하는 엄마모습을 티브이에서나마 본게 얼마나 좋으냐구!!!
펄쩍 뛸 정도로 반갑고 눈물나게 그리웠지만 한쪽구석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정체불명의
울컥거림이라니...
정체를 모르고 무작정 집찝한 마음에 한숨자고 일어나 가만 생각해본다.
허허....그거였구나....
'난 엄마가 노인인줄 몰랐다'
십여년도 훨씬지난 옛날에 김혜자아줌마가 주연했던 단막극(?)의 제목이
[아직은 마흔아홉]이었다고 기억한다.
당연히 미모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지만 여러가지면에서 닮은 점이 많은 엄마이기에
나도모르게 머리속에 각인된 49라는 숫자였나보다.
엄마나이는 마흔아홉....
작년에도 내년에도....마흔아홉
십년전도 십년후도 무조건 마흔아홉
흐...그러면 13년후에 나랑 갑장먹겠네 -_-;
뉴저지 팰리사이드의 시설좋은 노인회관에서 공부도 하고 무용도 하며 봉사도 하면서
노인연금으로 부족하지않게 살아가는 노인아파트주민 울 엄마.
허허...
인정할건 해야겠지만 가슴과 머리는 한 몸이 아닌듯이 자꾸만 빗겨나간다.
가슴이 조금 양보해서 지금 내 머리속에는 '마흔아홉살노인 = 엄마' 라는 공식이
어설프게 써지고 있다.
P.S 김혜자=울엄마 라는 또다른 공식이 좀 억지다 싶을지 몰라도
류시원=내동생 이라는 울엄마의 공식보단 덜하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