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우중충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저녁 무렵이 되니 오히려 한낮에 보다 더 날이 풀린 듯 느껴지는 저녁이네요.
모두들 이제서야 저녁 설거지 끝내고, 뉴스와 스포츠뉴스를 대충대충 귀로 눈으로 들으며 집안 일을 마무리 하셨어요?
아침에 일어나 서둘러 아이들 학교로 보내고, 빨래 세탁기에 돌리고 한 것이 불과 5분전 일인 듯 싶은데, 보세요... 벌써 밤이네요.
세월이 그래요.
어찌나 정신없이 지나는지,
이러다 금방 할머니되겠다... 싶어요.
어차피 할머니 될 거, 좀 더 멋지고 세련된 할머니가 되었음 좋겠네요.
요며칠 마음이 불편해서 혼났어요.
사람의 마음이란 게 변덕이 죽 끓듯 해서, 어떤 날은 쉽게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 또 어떤 날에는 부글부글 끓고 넘어가게 되잖아요.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해두 말이죠.
괜스리 울적해지는 마음 끝에 사소한 일로 어머님께 불편을 끼쳐드리고야 말았기 때문이지요.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 속담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사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어르신들은 이 사소한 한 마디 말에 기뻐도 하시고, 노여워도 하시잖아요.
결국 다 제 탓이었어요.
옹졸하게 속이 좁아가지고, 어머님을 노엽게 해 드렸으니...
그래서 오후엔 결국 야단을 맞고 울고 집으로 돌아왔거든요.
죄송하다고, 거듭 용서를 올렸지만.
그리고 나서 옹졸하고 덕이 모자란 제 자신을 향해 혀를 끌끌 찼어요. 조금만 참고, 한걸음만 더 뒤로 물러서 있을 걸....
우리 인생이 그렇잖아요.
마치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엎었다 하는 것처럼, 늘상 단조롭고 반복적인 것들이 계속 될 뿐, 어디선가 갑자기 획기적인 기적이나 놀라운 행운이 툭 떨어지며 우리를 경악케 하는 즐거움이 복병처럼 숨어있지 않듯 말이죠.
일주일이 지나면 손톱이 길어져 있고, 머리칼은 한달에 한번쯤 미장원에 가서 손질을 해 줘야 하고, 봄에서 여름으로 향하는 가 하면, 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다가 또 낙엽이 실연당한 여자의 눈물처럼 떨어지고, 흰 눈발이 펄펄 흩날리며 계절이 다시 바뀌듯이 말이죠.
그런 인생을 살면서 왜 그렇게 마음을 옹졸하게 쓰고 사는지....
자신이 부끄러워져서 오후내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읊조리며 시간을 보냈어요.
아줌마 허리는 고무줄 허리라는 말 있잖아요?
아줌마 마음은 고무줄 마음이란 말이 생기게끔 가끔은 마음을 고무줄처럼 죽죽 늘였음 좋겠어요.
저기 먼 한라산 산 꼭대기쯤에다 마음을 널어놓고 볕이 잘 드는 곳에 잠시 말렸다가 맑은 바닷물로 훠이훠이 한번씩 저어서 또 햇살에 말리고, 그렇게 한번씩 마음을 꺼냈다 집어넣다 할 수 있음 좋겠네요.
눈을 감고 말이죠, 그렇게 상상을 해 봐요.
여러분은 오늘 어떤 일로 상심하고 걱정하고, 힘드셨어요?
누군가 나에게 괴로움을 주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과 긴밀한 유대관계가 있었을 것이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 살갑게 가까워지겠지요?
마음에 입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고, 세월이 가면 잊혀지겠지요.
햇살이 잘 드는 차밭 옆에 앉아서 유채꽃을 바라볼 수 있었음 좋겠네요.
제 마음 울적한 줄 알고, 차밭으로 불러내 주신 제주에 사시는 house54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산다는 것과 도를 닦는다는 것, 어찌 보면 참 닮은 꼴을 하고 있어요.
특히 여자들 앞에 놓여진 생에 있어서는 더욱 더요.
집안 일에 종일 바쁘게 육체적 정신적 수고를 아낌없이 베풀고 사는 님들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빌겠어요.
저녁에 맥주 한 잔 어때요?
생의 고단함을 알콜로 씻어주는 것도 때론 심장에도, 혈관에도 좋을 수 있다니깐, 시원한 맥주를 한 잔 하며 하루를 접고 싶네요.
남아있는 1시간 15분, 아주 잘 보내세요.
우리의 삶은 또 아주 금방 지나가겠지요?
그럼, 모두 평안한, 행복한 밤이 되시길 바라며.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