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00

이민 (8) -- 왜 ? Why ??


BY ps 2002-03-28

일상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외로움이 몰려왔다.
친구들도 보고싶었고,
온 산에 가득 피었을 개나리와 진달래도 그리웠다.

10분 정도 통화하면 4인 가족 일주일 식비가 될 정도로
비쌌던 국제전화라 (요즘 10분은 냉면 한그릇 정도) 엄두도 못내었고,
그나마 위안이 되어주던, 가는데 보름 오는데 열흘씩 걸리는
친구들의 편지들도 나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한 채 조금씩 줄어만 갔다.

심심할까봐 아버지가 아시는 분의 아들을 소개시켜 주셨으나,
나보다 6년 먼저 미국에 온 동갑이었던 그 친구는,
성격도 나와는 딴 판이었고, 6년 동안 한국사람들과
별로 접촉이 없었던 탓에 한국말도 어눌했기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영어공부 한다고 테레비 앞에 앉아 있어도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고,
부모님의 걱정어린 눈길도 귀찮았으며
동생들에게 까지 가시 돋힌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부었다.

난생 처음 "혼자"라는 느낌이 왔다.
가족이 옆에 있었음에도 계속 외로웠고,
급기야는 나를 이곳에 오게 하신 부모님 원망마저 들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컸었는데,
"왜 저를 여기에 데려 오셨나요?",
"저, 돌아갈래요!" 라며 대들 때마다
아무 말씀 못하시던 아버지가 무능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 편지가 올 때마다 조금 나아졌다가는 다시 침체되어,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해봤지만
명쾌한 대답은 없었고, 밤마다 나를 괴롭히던 외롭다는 생각은
'자살'이라는 단어를 친숙하게 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그 나이에도 '자살'이 해답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알았고,
그저 돌아가는 시계바늘을 아무 생각없이 쫓아가는 듯한
무기력한 생활을 하기를 몇달.....
그러던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막지역 특유의 뜨거운 태양이 8월 말의 L.A.를 달구고 있었고,
그 건조한 뜨거움 속에 곧 시작될 미국대학의 첫 학기에 대한
조그만 위기감이 그렇게 힘들던 감정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약이었던 것이었다.


이때 겪은 방황 덕택에,
훗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떠오르던
"내가 왜?" 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만족스런 대답 없이도
어려운 시기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삶에 대한 정답은 아무도 갖고있지 않다는
일종의 운명론적인 사고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