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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 다녀오는 길에...


BY ns05030414 2002-03-28

평소 난 걸음이 빠른 편이다.
앞서 가는 사람이 두 발작을 띨 동안 세 발작을 띠며 빠른 속도로 그 사람 추월하길 즐긴다.
인생에서 남을 추월할 기회가 없음을 보상이라도 받듯…
평소 운동을 즐기지 않기에 걷는 동안이라도 운동 삼아 걷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딸의 심부름으로 우체국에 가는 길, 발길은 절로 느려지고 눈길은 절로 빨라진다.
아파트 건물 현관을 나서자 마자 노란 수선화와 팬지, 보라 크로커스와 히야신스 무더기가 눈길을 끈다.
심은 자의 의도대로 보라색과 노란색의 대비가 화려하다.
화단 가장자리의 제비꽃도 자기를 살펴보란다.
활짝 핀 꽃은 핀대로, 봉우리는 봉우리대로…
그냥 지날 수 없어 제비꽃의 키에 맞춰 쪼그리고 앉아 아이를 어르듯, 손끝으로 제비꽃을 어른다.
아무리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어도 싫증날 리 없지만 갈 길이 있으니 제비꽃과 아쉬운 이별을 한다.
길을 걸으며 내 눈은 앞보다 옆이나 위 아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눈길은 위 아래 옆으로만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멀리로 가까이로 또한 분주하다.
가는 길에 눈길을 끌어 당기는 꽃은 멀리도 있고, 가까이도 있고, 높이 솟은 나무 끝에, 땅에 조그만 풀꽃으로 있기도 한 때문이다.
산수유는 벌써 색깔이 많이 바랬음을 느낀다.
봄이 무르익고 있음이다.
목련은 각기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다.
비교적 따뜻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벌써 꽃잎이 떨어지고, 어떤 것은 한창 자태를 뽐내고, 어떤 것들은 이제 막 봉우리를 열기 시작한 것도 있다.
아파트 숲 사이에서 햇빛을 찾아 위로 위로 솟아 미처 목련임을 알 수 없던 나무들도 꽃망울을 매달고 서서 자기도 목련이었음을 알리기도 한다.
라일락 가지 끝에도 보라 빛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질식한 만큼 강한 향기로 즐거움을 선사할 모양이다.
파릇한 새순으로 단장한 능수버들도 어느 꽃나무에 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길을 기다린다.
벚꽃도 가지 끝에서부터 하나 둘 수줍은 속살을 열어보인다.
조그만 풀꽃도 자기를 봐 달라고 아우성이다.
노란 민들레, 조그맣고 하얀 봄맞이꽃, 냉이꽃이 무리 지어 있으니 더욱 곱다.
가끔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길을 이탈하여 가까이 가서 살피기도 한다.
조그만 풀꽃이기에 가까이 가서 눈높이를 그들에게 맞추고 시야를 좁혀서 바라봐 주어야 하는 것이다.
눈길을 끌려 하지 않았던 이름 모를 풀꽃이 쪼그리고 앉으면 눈에 들어와 뜻밖의 신선한 기쁨을 선사하기도 한다.
쪼그리고 않아 분주히 꽃 사이를 나는 벌들을 바라보며 슬며시 웃음이 밴다.
그래 벌과 나비가 있어 꽃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지...
그리고 윙윙거리는 벌소리는 봄의 소리이기도 하고...
가을 꽃, 여름 꽃이라고 봄날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뾰족이 땅에서 돋는 새싹으로, 나무 가지에서 파릇하게 피어나는 이파리로 자기를 잊지는 말라고 부탁한다.
지천으로 널리 개나리는 그런 까다로운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저 가끔 스치듯 지나치는 눈길로 바라보아 주는 것으로 족하다는 듯…
그래 봄이다.
뺨에 와 닿는 공기도 상쾌하다.
살아서 이런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음이 감사한 순간이다.
꽃처럼 찰나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현혹되지 말라는 충고도 있다.
그러나 찰나적이고 감각적인 것이어도 좋다.
때로는 찰나적이고 감각적인 것들이 행복의 필요충분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우체국에 다녀오는 동안 느릿한 걸음으로 이렇게 한껏 여유를 부리며 난 생각했다.
그래, 순간일지라도 좋다, 봄이 주는 행복에 빠져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