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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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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은 편지함 *


BY 쟈스민 2002-03-27

수없이 쏟아지는 광고성 메일...
그런 메일들속에서 반가운 이름하나를 찾아낸다는 일은
늘 그날이 그날같은 우리네 일상속에 신선한 한줄기 바람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20대의 단발머리 나폴거리던 시절
풀향기가 절로 싱그럽던 그 시절의 나와 아주 각별한 인연을 쌓으며 살았던
내 기억속의 저편에서 아득히 살아있는 이에게
어느날 난 옛추억을 더듬으며 메일 한통을 보낸다.

추억속으로 여행을 떠나듯 아련히 밀려오는 그리움의 열차를 타고서...

그 추억속의 장소는 무한히 넓고 파아란 바닷가를 끼고 있는 지방의 소도시였으며
주말이면 그 바다에서 살다시피 하던 때였다.
물론 그 바다는 친구들과 함께였지만...

물설고 낯설은 타향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지를 옮기면서 알게 된 직원이었는데,
얼굴이 다소 검고 큰 키에 순해 보이는 안경너머로의 웃음이 인상적인 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쳐가며 일을 하려니 참 답답했을텐데도
그 분은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차곡차곡 내게 업무를 가르쳐 주셨다.

이성이었지만 전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 그냥 편안한 이웃집 오빠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아뭏튼 그 분은 그때도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계신분이었지만
언뜻 보면 떠꺼머리 총각처럼 보이기도 했다.

얼마나 자상한 분이신지 집떠나 먼곳에서 생활하는 자취생 여직원 이사하는데까지
꼼꼼히 살펴주시던 너무도 인정많은 분이셨는데 많은 걸 받기만 하면서도
그 당시엔 그러려니 무덤덤하게 넘겼던 것 같다.

그렇게 시골의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서 출근하며 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날에는
오토바이로 친히 집에까지 바래다 주시곤 하던 그 세심한 인정을
십오년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산다.

서로들 자신의 생활에 충실하느라 그동안 잊고 살았는지 모르지만
가끔씩은 꺼내어 보며 은은히 미소지을 수 있었던 추억의 한 장으로
남아있었던 게 사실이다.

몇년의 세월동안 늘 그 분의 옆자리에서 함께 근무를 하는 인연으로 만난 우리들이었기에
그 분의 친구중 한 분은 왜 네 옆에는 항상 그 여직원이 있냐라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슬하에 딸 아이 하나를 두셨는데 오랜 동안 작은아이가 생기질 않아
부부가 고민하였다는데
지금은 아들 딸 쌍동이를 낳아 아주 알콩달콩 살고 계시단다.

20년 세월 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아마도 그 때보다 더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진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곳을 떠나 있더라도 오래도록 그런 친분을 가지며
가끔씩은 바다가 보고 싶어... 옛사람이 그리워 ...
떠나고 싶은 날이 생기면 아마 나는 그곳을 떠올릴 것만 같다.

오늘에서야 내가 보낸 메일을 열어 보았다고 전화를 하시며
나를 기억하는 마음으로 보낸 짤막한 멜 한통이 받은 편지함에 담겨져 있었다.

십 오년전과 똑 같은 목소리로, 똑 같은 표정으로 편안한 웃음과 함께
야... 누구야... 하며 사는 이야기를 건넬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몇번이나 전화를 하셨다는데
그때마다 내가 자리를 비웠는지 영 통화가 안 되었다 하신다.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거
누군가를 좋은 기억으로 내 기억속의 한 페이지에 남겨 둔다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어쩌면 실컷 해보고 싶은 일이 아닌가 싶다.

글을 쓰는 일은
전화로는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하는 내 마음을 열어 보일수 있어서 참 좋다.

어느날 홀연히 바람처럼 나타나서
다시 만나면 그리운 옛시절을 꺼내어 마구 추억해 대며
하루 종일 실컷 웃음 보따리를 풀러 보아도 좋겠지 ...

지금은 비록 20대의 풋풋한 아가씨의 모습은 간데 없지만
그래도 40을 바라보는 자신있게 살아가는 오늘의 아줌마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괜찮을것 같다.

아이들을 기르고, 각자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사람들
아직도 한 직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진심으로 서로를 염려해주는 마음 따뜻함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만남이
내 삶에 기쁨과 위안을 줄수 있다면 ...

나는 그런 바램이 드는 마음을 차곡히 정리해 두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만날날을 기약해보니
한없이 편안하고, 흐믓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