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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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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휴가 *


BY 쟈스민 2002-03-21

오늘은 우리집 큰 딸아이의 열번째 생일입니다.

며칠전부터 아이는 내게 생일초대장을 만들어 달라 하길래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다 동원하여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모양으로
아이와 함께 컴 앞에 앉아서 생일초대장을 만들었습니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뭔가를 만드는 일은
예전에 알지 못하던 또 다른 즐거움을 선물해 주고 있었습니다.

평일날이 생일인 관계로
오늘 하루만큼은 그 어느날보다 즐겁고 기쁜마음으로 보낼수 있도록 아이에게 그리 해주고 싶어서
사무실엔 모처럼 휴가를 얻었지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조용 조용 발걸음을 움직여 가며
아이가 좋아할만한 반찬을 만들며, 맑고 담백한 미역국도 끓여두었습니다.

학교에 가는 두 아이들을 여느때와는 달리 느긋하게 배웅도 해 줄수 있어서
오늘 하루는 나에게 있어서도 무척 여유로웠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줄 수 있었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여느 주부들의 일상속으로 돌아가
바삐 청소와 빨래를 하며 아이들의 점심준비를 서두르다 보니
맘놓고 앉아서 커피 한잔 마실 틈도 없었습니다.

늘 밖에 나가 근무하는 사람이어서인지
집에 있으면 마냥 여유를 부릴수 있을꺼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주부들의 일상이란 정말 끝이 없나봅니다.

저녁나절에 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하여 조촐한 생일파티를 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기에 ...
집 안팎을 반들반들 윤기나게 닦아 두고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로 상차림을 하기 위하여
하루 종일 나는 이런 저런 궁리를 했습니다.

그냥 애들이 좋아하는 거 몇가지 시켜서 상을 차릴까 하다가
그러면 왠지 서운할 것 같아서
여러가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김밥이라도 엄마손으로 손수 싸야지 싶어
나는 김밥집 아줌마가 다 되어 넉넉히 김밥을 말았지요.

김밥은 김밥이 가장 잘 어울릴만한 접시에 가지런하고 예쁘게 담아내고,
딸기와 오렌지는 제 각각의 색깔을 살릴수 있는 접시에 쪽 고르게 담아보니 한결 폼이 났습니다.

애들에게 뭐가 좋을까 물어보니 탕수육을 잘 먹는다고 ...
익히 다른애들 생일파티에서 눈여겨 보아둔 딸의 말을 참작하여
동네에서 젤로 맛있게 한다는 집에 주문을 했습니다.

케익은 초코케익, 꽃은 노란장미와 흰 후리지아 ...

정말 잘 차린 생일상은 아니었지만 향기로웠으며,
그래도 아이들에게 나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으니
내 나름대로는 애쓴 흔적이 엿보여서 내심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 곁에 서서 저마다 좋아하는 음료수를 골라서 따라 주기도 했지요.

열 서너명은 족히 되는 인원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저리도 예쁘고 고울까 ...
요즘 아이들은 하나같이 엄마들이 가꾸고 다듬어 놓은 깍은 밤톨 같기만 했습니다.

다들 학원 다니느라 바빴을텐데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시간 이었음에도
약속을 잊지 않고 찾아와준 딸아이의 친구들이 난 그저 고마워서
내 아이에게 친구들을 향하여 고마움의 인삿말을 하라고 ...
잠시 기회를 주어보기도 하면서 ...
재미난 한때를 보냈습니다.

내 유년의 기억속에도 엄마의 사랑으로 차려진 생일상이 물론 없진 않았겠지만,
요즘 아이들의 그것에 비하면 그리 풍족하지 못한 생활이었던터라
엄마는 늘 마음만으로 그치실 때가 많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기에
내 아이에게만큼은 이다음에 커서 추억할 만한 시간들을 남겨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워낙 말수도 없고 성격이 조용한 아이라서 친구도 몇명 없는줄 알았는데 ...
무슨 선거운동이라도 하는양
삽시간에 그 여러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재주가 우리 딸에게 있었다는게 신기하기도 했으며,
여러 아이들과 두루 잘 어울리는 아이의 둥글둥글함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 친구중에 한 아이는 멋진 피아노 연주솜씨로 친구를 축하해 주었으며,
또 다른 아이는 컴 실력으로 친구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더군요.
좋고 싫음이 분명한 요즘 아이들에게선
우리의 어릴적과는 너무도 많은 다른 점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예전의 세대들이나, 지금의 세대들 모두가 다 하나같이 느끼는 것은
변함없는 우정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처음으로 엄마가 되는 기쁨을 내게 주었던 그 아이의 10번째 생일이기에
축하하는 나의 맘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엄마품에 안기기를 마냥 좋아하는 아이
혹 그동안 내가 준 사랑이 부족해서는 아닐까 하여
가끔씩 내 마음을 아프게도하는 아이는
친구들에게 그것만은 비밀로 해 달라며 애교를 떨기도 하지요.

내 아이의 생일을 챙기면서
하루 종일 나는 내 어머니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도 내게는 늘 그런 어머니셨을 꺼라는 생각으로
이만큼 자란 딸아이가 대견해 기뻐하다가도
한편 그만치 가슴이 아프기도 한 걸 보면
바로 자식을 낳아 보아야 부모 마음 안다는 그 말이 정말 맞나봅니다.

내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고 싶은 만큼이나
내 아이들에게도 정말 좋은 엄마로 살아가고 싶어서
하루종일 아이들을 사랑스런 눈길로 그냥 그렇게 바라볼 수 있어서
좋은 하루였습니다.

나의 이런 휴가를 탐탁치 않아 하는 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난 오늘 그동안 내가 못다 하고 접어 두었던 엄마노릇을 하고 싶어서
그리 했을 뿐이니 후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식을 향한 내 사랑은 주어도 주어도 끝이 없을꺼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 엄마로 살 수 있는 지금이 참으로 행복한 시절임을
다시한번 새로이 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극심한 황사현상으로 온통 흙먼지가 뒤덮힌 하루였지만
내 마음만은 한 없이 평화롭기 그지 없는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재잘대던 아이들은 벌써 꿈나라 여행을 시작하였고,
나는 지친 다리를 잠시 쉬면서 오늘을 마감하려 합니다.

내일은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 지금껏 그랬듯이
제일 편안한 옷을 걸쳐 입은 듯 나의 일을 해야 겠지요.

사는 동안 아주 가끔씩은 오늘처럼 달콤한 휴가를
얻고 싶을 것 같습니다.

좋은 엄마 노릇을 위한 거라면
마음같아선 오랜시간의 휴가도 썩 괜찮을 것 같다며 ...
지는 하루를 아쉬워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