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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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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두고


BY 안아 2002-03-20

1년이 다되도록 친정에 두었던 피아노를 집으로 가져왔다.

무겁고 큰 물건인지라 어쩐지 선뜻 가져오게 되질 않았다.

그리 대단한 사연이 담긴 물건도 아니기에 그냥 두고 와도 상관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아노를 가져다 놓은 후에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피아노를 산것이 아마도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가?

반짝거리게 닦아놓고 조율해놓으니 마치 새것 같은데 나이가 제법 들었다.

정확히 언제 피아노를 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내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우리집에 피아노가 있었으니

그 전에 구입을 했던가보다.

초등학교 시절 여자라면 한번쯤은 피아노에 대한 욕심이 들었을게다.

마치 자신이 금방 음악가라도 될것처럼 그렇게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단순하기 그지없는 악보를 보고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그런 꿈은 얼마 못가 없어지고만다. 다행스럽게도 피아노 선생님께서는

내가 피아노를 잘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거의 연습을 안하는 것치고는

조금씩 늘었던가보다. 그 말에 신이 난 나는 학원은 열심히 갔더랬다.

연습을 안했을 때도 푸근한 느낌의 선생님을 뵈러 가는 것이 좋았던것같다.

그저 이웃집 아줌마 같고 편하기만 하신 분이었다.

가끔은 간식도 주셨던것 같고 눈웃음을 지으면서 참 잘 웃으셨다 .

그렇게 바이엘을 배우고 체르니를 배우다가 강남으로 이사를 왔다.


역시 강남은 선생님부터 세련되셨다. 그냥 가정집에 피아노를 몇대 들여놓으셨던

지난번 선생님과는 달랐고 연습실이 몇 개 줄줄이 있고 들어가서 연습을 하고 있으면

젊은 선생님께서 몇번 지도를 해주시고 다시 옆방으로 가시고는 했다.

잘한다는 칭찬같은 것도 별로 없으셨고 그저 학원선생님이셨다.

그것이 나의 6학년때였고 리틀엔젤스예술단이란 곳에서 무용을 시작하면서

재미없어지고 있었던 피아노와의 인연은 끝이났다.


내 동생도 잠시 피아노를 배우기는 했지만 동생도 내가 시작한 다음해부터

무용을 시작해서 그 피아노는 주인이 없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내가 고등학교를 가야금으로 들어갔을 때 부전공으로 피아노를 배워야 하기 때문에

다시 피아노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같은 악기인데도 가야금보다 피아노는

왜 그리도 어려웠던지 항상 시험 때만을 겨우 넘기고는 했다.

가야금 전공자를 뽑는데 피아노 시험을 왜 보는지 암튼 대학입시까지 무사히 치르고는

피아노는 그냥 취미 정도로 남게되었다.

지금의 내 실력은 ......그냥 가요 악보보면 더듬더듬 치는 정도 .

맘같아서는 멋드러진 곳을 쳐내고 싶은데 그저 맘일 뿐이다.


어떤 것이든 제자리는 있는 법인가보다.

커다란 덩치의 피아노가 방황을 마치고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작은 내 방을 가득 채우고 내 방이 모두 자신의 영역인것처럼 차지를 하고있다.

역시 그곳의 주인은 자기였노라고 .

나에게 방황하지 말라한다. 새로운 것만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도 중요하다한다.


피아노가 시간이 걸려 자신의 자리를 찾아오듯

나도 제자리로 돌아와야겠다. 시작만하고 흐지부지했던 일들과

좋아하는 일인데도 새로운 것에 대한 환상에 젖어 버렸던 일들을 찾아야겠다.

오래된 피아노와 함께 안아도 제자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