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노쇼 차단을 위해 식당에서 예약금을 받 는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33

독립군의 자손들


BY eheng 2002-03-17

나의 증조부께서는 드넓은 만주벌판을 달리며 독립 운동을 하셨다는 전설이 대대로 가보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또한 할아버지께서도 백두산을 전전하시며 호랑이를 한 손으로 때려잡으셨고 날으는 꿩을 맨손으로 나꿔채셨다는 말도 바람결처럼 흘러 내려온다.
친정 아버지께 그 말이 맞냐고 물으면 빙그레 웃으시며 할아버지께서 장사차 다녀오신적은 있다고 말씀하시고 할머니께서는 백두산 유람차 다녀오신 적은 있다고 하신다.
어쨌든, 장사차 가셨든, 유람차 가셨든 빛바랜 사진첩 속에 기다란 지팡이를 짚고 개나리 보쌈을 둘러멘 호랑이 같은 형형한 눈빛의 잘생긴 젊은이가 우리 할아버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만주벌판과 백두산을 오르내리시던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지금 역시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아니던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장군의 손녀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내 큰 딸과
아장거리는 걸음마로 첫 발을 띤 순간부터 자신의 유모차는 타는 것이 아니라 밀고 다니는 것임을 너무나 어린 나이에 깨달은 작은 딸.
그녀들의 핏줄 속에는 독립군의 피가 흐르는 것임에 분명하다.

어린 두 딸을 일찌감치 독립시키고 이제 나는 홀가분하게 내 일을 한다. 다른 엄마들은 한참 손이 많이 갈 나이라며, 지금 신경쓰지 않으면 인생이 결딴난다며 학교로, 학원으로, 박물관과 문화센타와 전람회장으로 아이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만...
나는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산에도 가야하고, 전시장에도 가야만한다. 아이들은 내게 때때로 이렇게 해야 균형잡힌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다고 귀뜸을 해준다. 하기 싫어도 가끔씩은 해야할 일들을 해버리는 것이 사회생활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가르쳐주기도 한다.
똑똑한 부모가 아니어서 좋은 점은 아이들이 어리버리한 부모들에게 질려서 스스로 자신을 챙기는 지혜가 생긴다는 것이다. 또, 부모에게 기대서는 별반 도움이 안되리라는 판단으로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시작한다. 독립할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나는 올 봄에 내 두 아이들이 확실히 독립했음을 깨달았다.

학원에 한번도 다녀본 적이 없는 큰 아이(중학생)는 두어달 전 밥을 먹으며 내게 종이 한장을 신중하게 건넨다. 펴보니 영어학원 광고문이다. 이게 뭐냐고 하자 자기도 학원에 다니고 싶다며 올 해부터 중학생 입학금을 나라에서 60만원 정도 지원하니까 그 돈으로 자기는 학원엘 다니겠다고 한다.

"다녀도 되지요? 꼭 다니고 싶어요. 다른 친구들도 다 다니는데..."
"그래. 그 대신 열심히 해라."
"야호! 신난다."

이렇게 해서 학원에 첫발을 디딘 꼴꼴난 중학생 딸아이는 가끔씩 내게 히겁하는 협박을 받곤한다.

"너 그렇게 하면 학원 끊는다."
"아아니~ 잘 할께요. 제발~"

으하하하! 남들은 학원에 다니기 싫어서 주리를 튼다는데 우리집 아이는 학원을 끊을까 봐 설거지도 열심히 하고, 제 방 청소도 잘 하고, 빨래도 잘하고, 동생과 밥도 잘 해먹는다. 내가 뭐라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대뜸 이렇게 말한다.

"엄마, 예전같으면 저 시집갈 나이예요."
"@%&^*%~~~"

어제 작은 딸은(초등3학년)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며 학교에서 오자마자 책가방을 던져 놓고는 급히 나갔다. 그런데 6시가 되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워낙 장군의 손녀라서 걱정은 안하고 있었지만 밥??가 되어도 안 들어오는 게 슬며시 걱정되어 베란다 밖으로 놀이터만 열심히 바라보며 눈으로 아이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려서 받으니 공중전화로 수신자부담 통화를 신청해서 전화를 걸어 조금 늦었지만 걱정하지 말라면서 지금 거의 다 왔다고 한다.
조금 후에 두 뺨이 빨갛게 얼어서 들어 온 작은 아이는 친구들과 호수공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호수공원이면 걸어서40분 이상,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았으니 그 걸음으로 5시간은 족히 걸린 모양이다. 친구 네명과 같이 사회숙제로 <학교에서 남쪽에 있는 곳에 다녀오기> 를 하러.
그러면서 3학년이 되니 학교숙제가 만만치 않다나? 나는 작은 아이의 통통한 엉덩이를 마구 두들기며 오메 기특한 거~ 를 연발했다.
작은 아이는 배가 고팠던지 고봉밥 두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도 주걱에 붙은 밥알을 열심히 긁어 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마디...

"엄마, 우리 학교에서 동쪽에 있는 건 모예요?"
"음... 정발산이지."
"휴우~ 내일은 또 정발산엘 가야하나? 에구~ 다리야. 다리에 알밴다."
"@#%%$#~~~"

지금 큰 아이의 별명은 소녀가장이고,
작은 아이의 별명은 통반장 아줌마다.

난, 스스로 독립한 내 두 아이들을 보며 독립된 인격체에게 박수를 보낸다. 장하다! 독립군의 자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