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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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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풍선을 달고.


BY 雪里 2002-03-12

둥둥 떠있는 마음을
진정하려고 신문을 펴들고 시선을 집중시켜 보지만
글자가 눈에 잘 들어 오지 않는다.
줄바꿈이 잘 안되서 몇번이나 읽었던 글자를
또 읽어가며 마음을 가라 앉혀 본다.
연두색 강아지가 태어났단다.
별일도 다있다는 생각을 하며 집마당에 연두색의
강아지 한마리가 돌아 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웃음이 나오며
마음이 좀 가라 앉는다.

지난주말에 여고 친구들을 만나고 왔다.
여고 졸업후 삼십년이 가까운 시간동안 못만나고 지내다가
처음 만나는 친구를 단번에 알아보며 흐른 시간을
잊고 시작된 대화는 줄줄 꼬리를 물었고
어느새 우리는 여고 시절로 되돌아가 있었다.

함께 자리 하지 못한 친구들의 안부도 묻고
선생님들의 소식도 모아가는데,
마음 한구석에 늘 자리하고 계셨던 선생님 한분은
벌써 이세상에 계시지 않으시다는 소식을 접하며
죄스러운 마음이 한켠의 가슴을 아려 내고 있었다.

"모든게 때가 있는건데 사는데 허둥대다 사람으로 할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며 살아왔구나.!" 싶었다.

어제부터 나는 시간 날때마다 열심히 전화통앞에서
번호를 눌러대고 있다.
연락처를 알아 가지고 온 친구와 선생님을 찾고 있는거다.

엊저녁 늦게야 연결된 수화기속 친구에게서
"너무 보고 싶어, 기집애.!"라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 오랫만에 들어 보는 이 친근한 소리에
나이를 잊고 난 기뻐하고 있었다.

오전시간, 화실에 앉아 붓을 들고서도 마음은
담임선생님과 연결되지 않았던 전화로라도의 만남에
제대로 된 선을 만들지 못했다.
강의중이시라는 말만 몇번 듣고 끊긴 전화땜에
다른날보다 일찍 마무림을 하고 왔다.

또, 수화기를 든다.

"교수님 지금 연구실에 계십니다."
라는 여직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고맙습니다."를 해버리고
나는 벌써 전화기의 다른 숫자를 누르고 있었다.

"여보세요!, ***교수님이세요?"
"네 그렇습니다."
"저..저...저를 기억하시려나 모르겠는데... 저 ***에요, 선생님."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는 오랜시간이 지났어도 달라 지지 않고
약간은 허스키한채로 그대로 씩씩하셨다.

"응,@@ 에서 통학하던 키큰 아무개! 알지! 잘있었어? 정말 반갑다."

역시 그분은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세세한 부분까지 그대로
나를 오래된 시간 저편에서 꺼내시며 반가와 하시는 목소리에
나는 이미 붕~ 떠버린 음성으로,
찾아 뵙겠다고 말씀드리며, 하얀 춘추복을 입은
귀여운 여학생이 된채로 선생님께 응석어린 전화를 하고 있었다.

금요일엔 강의가 없으시다며 휴대폰 번호를 일러 주시는
그분도, 오랫적 제자가 걸어준 전화에 조금은 흥분하며
기뻐하고 계셨다.

"찾아가 뵈어야지!"

그동안 사는데 매달려서 잊고 지냈던 선생님께
이번 스승의 날엔 카네이션 한송이를 달아 드리고 싶다.

화창한날 오후.
네모난 시멘트 벽에 몸을 갇히운채로,
내 마음엔 풍선이 달려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속으로 날아 다니고 있다.

교정도 보이고, 넓은 운동장엔 하얀 체육복을 입은
애들이 잔뜩 뛰어노는 곳.
교실 창문에 턱괴고 내려다 보고 있는 아이, 밝은 봄햇빛에
눈쌀 찡그리며 눈부셔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