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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의 비리


BY 이쁜꽃향 2002-02-04

둘째가 졸립다며 엄마를 찾는다.
졸리면 혼자 잘 것이지
새삼스레 니가 뭐 어린 애냐고 핀잔을 주었다.
침대에 누워 등 좀 긁어 달래는 녀석의 청을
애교로 받아들이며 옷을 위로 올렸다.

"아~니, 거기 말고 오른 쪽 아래.
아니 더 아래
더 옆으로..."
별 까탈을 다 부리네 하며 등을 슬슬 문질러 주는데
"주먹으로 하지 말고 보로 해 줘."
참을성이 어디론가 가버리고
"뭐~여?" 버럭 소릴 질렀다.

분위기를 눈치 챈 녀석이 옆 눈으로 날 보며
"엄마, 짜증 나지?
옛날에 형아가 밤마다 내게 그렇게 시켰다."
아~니, 이거이 뭔 말인겨???
"난 형아가 젤 무서웠잖아.
형아 중학생 때 형아랑 한 방 쓸 적에
밤마다 형아가 자기 등을 백 번 씩 긁으라 했거든.
잠이 와 죽겠는데 하다가 그치면
야~ 계속 해라~ 이랬거든.
그래서 주먹으로 문지르면,
너~ 또 이빨로 손톱 물어 뜯었지?
아프니깐 보~로 해서 긁어 해서 맨날 맨날 긁었어."

십 년만에 낳은 둘째를
남편은 끔직이도 이뻐했고
내성적이고 얌전한 큰 애를 상대적으로
드러 내 놓고 차별 대우를 했었다.
게다가 초등학교 내내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했던 큰 애는
모범생의 표본이었고
어른 말에 대꾸를 해 본 적이 없는 착한 애였다.
둘째가 태어 나면서 찬 밥 신세가 된 큰 애는
내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가 보다.

"왜 엄마 아빠는 나만 이뻐해 가지고
형아한테 괴롭힘을 당하게 했어?
엄마, 나 정말 불쌍하지?"
중얼중얼 투정 비슷한 항변을 토하는 둘째의 이야기는
이미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세상에!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 착한 녀석이 아우에게 그랬을까
새삼 가슴이 아려왔다.
언젠가 큰 애가 고교생이었을 적
둘이서 한 방에서 뭘 하는 지 조용하기만 했는데
한참 후에 둘째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방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얘! 도대체 뭘 했기에 땀에 절어 나오니?"
"형아가 농구 슛하는 거 폼 잡아준다 해서..."
형은 침대에 누워 아우에게 골인 연습을 시켰대나.
마이클 조던인가하는 선수처럼 멋진 덩크 슛을 하려면
폼이 좋아야 한다며 잘 될 때까지 시켰다는 말에
무심코 웃고 말았던 기억이 떠 올랐다.

어쩌면 그것도 그럼
녀석의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었단 말인가.
"엄마, 나 얼마나 힘 들었겠어?
형아는 아마 지금 그 얘길 하면
기억이 안 난다고 할 지도 몰라."라는 둘째에게
"그~래, 그 나쁜 형아,
봇된 형아, 이 담에 군대 제대하면 엄마가 혼 내 줄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못내 마음이 아프다.
어릴 적 큰 애는 잠자리에 들면 늘 등을 긁어 달랬는데...
잠투정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녀석의
유일한 버릇이었다.
외할머니 손바닥은 거칠어서 아프다며
엄마가 해 주길 바라던 녀석에게
피곤하단 이유로 별로 못 해 주었었는데...

착하고 순한줄만 알았던 녀석에게
그렇게 오기스런 구석이 있었다니...
부디 아우가 형을 원망하는 마음이 없기를
마음 깊이 바라며
오늘도 군복무에 여념이 없을 녀석 생각에
가슴 한 켠이 아려 온다.
휴가 오면 등 긁어주며
아우의 이야기를 꼭 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