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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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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여! 야타족을 주의하시라


BY 이쁜꽃향 2002-01-22

오늘처럼 눈 내리는 일월 어느 날이었다.
여고졸업반이던 그 해 겨울,
단짝인 친구와 설경에 푹 빠져 무등산으로 향했다.
아마 대설주의보가 내렸던 듯
차량은 일체 통제되고 있었다.
거의 발등까지 빠지는 눈을 밟으며
무슨 할 얘기가 그다지도 많았던지
우리는 내친 김에 산장까지 가고 말았다.
산장의 작은 휴게소에는
우리처럼 겨울산행을 즐기는 일행들이
난로가에 모여앉아 손을 녹이며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단발머리와 갈래머리 소녀인 우리는
그 곳 사람들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린 듯 했다.
한 쪽 구석에서 우리도 차 한잔을 마시며
기억에 남지도 않을 이야기들을 나눴다.

시간은 흘러 어둠이 내리려 할 무렵,
시내로 나갈 일이 난감하였다.
그나마 아예 택시조차 다니질 않으니
천상 걸어서 그 먼길을 가야 할 판이다.
올 땐 몰랐는데 갈 일이 까마득하기만 하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이젠 모두 일어서려 하고 있다.
휴게소를 나서려는데 한 아가씨가 우릴 불렀다.
나가려면 한참 걸리는데 금방 어두워질 거라며
자신들과 함께 나가자는 거였다.
아마 회사 동료들인 모양이다.
남녀가 쌍쌍이 왔었던 듯 한데
남자들이 모두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었다.
마침 두 사람은 일행이 없으니 태워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잠시 우리는 망서리다 서로 만날 장소를 정하고
그 사람들의 오토바이에 합류하기로 했다.
나는 친구에게 지갑을 맡겨 두었고
각자 다른 사람의 오토바이에 실려 산장을 떠났다.

한참을 달려 시내로 들어서니 벌써 어둠이 사방에 깔린다.
주변을 둘러 보니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오토바이가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잖아도 불안하여 바싹 긴장되어 있는데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저씨!
이 길이 아니잖아요."
소릴 버럭 질렀다.
괜찮다며 염려말라더니 계속 골목으로만 가는 아저씨.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 들었다.
큰 길 쪽이 어느 쪽인가를 열심히 살폈다.
절대 도망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
태연한 척 하며 뛰어 내릴 순간만을 계산하고 있었다.
"추우니까 우리 저 음식점에 들어가서 잠깐만 쉬고 있으면
일행들이 올 테니 염려 마세요."라며
'**요정'이라고 간판이 붙은 한식집 옆에 오토바이를 세운다.
그 사람이 내리기 전에 잽싸게 큰 길을 향해 달렸다.
마침 시내버스가 멈추길래 냅다 뛰어 올랐다.
가슴이 온통 쿵쾅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차창 밖으로 멍청하게 이 쪽을 바라보며
오토바이를 다시 타고 있는 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지가 설마 버스 안으로야 못 들어 오겠지....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는 오질 않았다.
혹시 무슨 변이나 당하지 않았는지 걱정도 되고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 친구가 밉기도 하고,
지갑을 친구가 가졌으니 돈도 없고...
벼라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집에 갈 차비도 없어 할 수 없이 시내 아는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차비 꿔 달란 소리도 못 하고
그냥 놀러 왔노라 둘러 대고 하룻밤을 지냈다.
날이 밝자 가진 돈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만 차표를 샀다.
친구에게 맘 속으로 욕을 하며,
한 편으론 걱정을 하며 집까지 걸었다.
집에 오니 그 친구가 여러 번 전활 했다고 한다.
기집애, 무사했구나.
다음 순간 걸어 오느라 고생한 것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친구는 놀란 토끼 눈으로 날 찾아 왔다.
서로 자초지종을 들으며 박장대소를 했다.
친구는 몸집이 왜소한 남자의 오토바이를 탔었다.
(친구는 체격이 크다)
그 또한 엉뚱한 곳으로 달려 시골쪽으로 가더란다.
친구가 뒤에서 뭐라해도 듣는 둥 마는 둥 가더니
어느 음식점으로 들어갔단다.
지리도 모르고
체구도 작은 남자이니 자기가 해 볼 거 같아 잠자코 따라 갔단다.
'친구도 지금쯤 따뜻한 음식점에 있을 것'이라며.
술 한 잔 들어 간 그 남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친구에게 다가오더란다.
놀란 친구는 힘껏 그 남자를 떠다 밀었다.
뒤로 벌렁 자빠진 남자를 한 번 더 내동댕이치고 밖으로 뛰쳐 나오니
음식점 주인 왈,
"별나게 왜 그래, 아가씨. 재밌게 있다 가지."하더라나.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친구에게 그 남자가 다가와 미안하다며
약속 장소로 뒤늦게야 태워더 주더란다.
친구는 오면서,
"내 친구 걔 보통 아니예요. 얼마나 똑똑한 앤데, 당신네들 잘 못 했다간 아마 큰 코 다칠 걸요.'쏴 붙였다 한다.
하루가 지나고 난 뒤라서 웃음이 나왔지, 사실 그 날은 얼이 빠져 있었다고나 할까.
난생 처음 낯 선 사람 오토바이 얻어 타고서 혼이 난 후론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았다고나 할까.

생각할수록 괘씸하여 그냥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은 J햄쏘세지 회사 직원들이라 했던 게 생각 나
전화를 했다.
나를 태우고 간 아저씨가 나왔다.
"아저씨. 어쩜 그러실 수가 있어요?
저같은 딸도 있으실 연세되셨겠네요.
우리 오빠가 **신문 기잔데 한 번 신문에 나고 싶으세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게 협박 공갈에
얼마나 당돌한 짓이었는지...
아무튼 그 사람들이 미안하다고 그 당시엔 흔치않았던
햄과 쏘세지를 몇 박스를 주는 바람에
우리 동생들은 그 후로 햄과 쏘세지는 입에 대지도 않는다.

이십오년 전의 그 사건을 떠 올리며
친구와 나는 또 다시 그 시절로 돌아 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정말 '야타족'은 요주의 인물이야.
우리는 그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기로 했다.
또한 절대 남의 차는 얻어타지 않는다는 신조를
굳게 지키며 살고 있다.
그러자니 오너드라이버가 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