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제가 본 사랑입니다.
ㅇ시에는 한 부부가 딸 둘을 데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 가족은 ㅁ시에 살다가 작년에
ㅁ시와는 멀리 떨어진 ㅇ시로 이사를 했습니다.
부부 모두 ㅁ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40년 이상을 살았으니,
ㅇ시로 이사한 것에는 피치 못 할 사정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 가족의 가장, 그러니까 애들 아버지는 맹인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맹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때는 그럭저럭 제법 잘 나가던 사업도 하던 그가 맹인이 되어버린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시력이 몹시도 안 좋았던 그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차츰 차츰 더 시력이 나빠지더니,
결국은 실명을 해버린 것이지요.
남편이 실명해 가는 몇 년 동안 내내 사람들은 모두
결국에는 부인이 남편을 버릴 것이라고 쑤군대곤 했지요.
맹인이 되어버린 데다가, 경제적 능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남편을.
아직도 예쁘기만 한 부인은 전화국에 근무했습니다.
남편이 장애인이 되자, 부인이 결국 집안을 꾸려 나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 가족은 ㅁ시에서 ㅇ시로 이사를 한 것이지요.
ㅁ시에는 전화국이 없으니까요.
부인이 전화국에서 하는 일이란, 114 안내입니다.
그러니 부인이 벌어오는 월급으로 생활하기가 넉넉치 않다는 것, 짐작하시겠지요?
그 가족과 우리 가족이 지난 일요일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ㅇ시 시내에 있는 식당에서.
그 가족을 마지막으로 만난 지가 7년 전이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남편이 시력을 거의 다 잃어
바로 코앞에 있는 것도 못 보고 겨우 빛만 구분할 정도였지요.
그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엄마와 두 딸은 꼭 자매들처럼 명랑했으며,
세 여자들 틈에 사는 아버지는 몹시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남자는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얌마,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으니까, 꼭 모범택시운전사 같다.>
옆에 앉은 우리 남편이 친구의 옷을 보고 농담을 건네자,
<뭐? 그래? 아무래도 우리 부인이 나 모범 가장이 되라고
이런 옷 사왔나 보다. 하하하>
<어머,**아빠, 이 옷 이래뵈도 피에르 가르뎅이에요.. 호호호>
두 부부는 즐겁게 웃더군요.
고기를 구워 쌈에 싸서 남편 손에 놓아주고,
나중에 나온 된장찌게에 밥을 비벼 남편 앞에 밀어놓아 주고.
두 부부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덩달아 우리도 참 즐거운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 가족은 ㅇ시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그 집 가족은 ㅊ시로 가기로 되어 있지요.
ㅊ시에는 맹인 안마 학원이 있습니다.
맹인 안마 학원은 ㅊ시와 ㅁ시에만 있다고 하더군요.
<안마를 배우고 있어. 그래서 주중에는 가족과 헤어져 있지.>
그 가족은 부인이 모는 작은 소형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아이들 소변을 누이러 화장실에 갔던 나는
ㅊ시로 떠난 줄로만 알았던 그 집 둘째딸아이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하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화장실 입구에 그 아이가 서 있는 거에요.
어찌된 일이니? 물어봤더니,
<아빠가 화장실 가신다고 하셔서요...>
하며 그 아이는 웃고 있더군요.
엄마는? 하고 물었더니,
<엄마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차에 타고 계세요>
우리 남편이 화장실에서 나온 친구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ㅊ시까지 데려다 준다는 걸 내가 말렸다.
눈도 이렇게 많이 오는데, 길도 미끄럽고, 차도 밀리고..
나 데려다주고 돌아오려면 밤이나 되야 돌아올 텐데
위험해서... 야, 우리 가족 집에 도착했다는 전화 받을 때까지
얼마나 불안하겠냐... 시외버스 타고 ㅊ시에 가면 그곳 학원에서
사람이 나와준다고 했어. 걱정 없어...>
그 남자는 씩씩하게 말하더군요.
그리고 둘째딸과 첫째딸의 어깨를 짚고
ㅊ시로 떠나는 시외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아이 둘은 아버지가 탄 버스가 떠날 때까지
눈비를 맞으며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버스가 출발하자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날 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