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잎이 바람결에 날린다.
오늘은 바람이 쌀쌀맞아 바람요일이다.
머리위에 쓰고 있는 모자가 바람주먹 한 방에 날아갈 것 같다.
3월은 언제나 그러하듯 바람만 불다 지나갔었다.
이 번 3월도 똑같겠지.
어제부터 포크아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복집 다니며,
이 곳에 들려 방마다 글 올리며,
눈 코 뜰새 정말 없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나무를 보면 외롭고,
땅을 보면 쓸쓸하고,
꽃을 보면 뭉클하고,
하늘을 보면 눈가가 뜨듯해진다.
이 놈의 감상적이고 청승떠는 성격을 누가 말려.
우리집에서 부르는 내 별명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집순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집에만 있는다.
또 하나는 청승이다.
아침에 일어나 밥 올려 놓고 창가에 서서 하늘 한번 보고
화분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다.
낮엔 슬픈음악(난 이런 음악이 좋다)틀어 놓고,
창이 마주 보이는 식탁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툭하면 본다.
길가다가 가던길을 멈추고,풀꽃들을 한눈에 뿅가서 보고,
떨어지는 살구꽃잎 따라 손을 벌리기도 한다.
그래서 청승맞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 보니 며칠전에 뿌린 채송화씨가 싹이 되었다.
새싹이 자잘하고 연약해 물을 줄 때 조심스럽게 주었다.
물에 떠내려 갈 것만 같다.
단감을 먹고 감씨 두 알을 화분 귀퉁이에 손가락으로 쿡 찔러
넣었는데 그것도 싹이 나와서 신나게 크고 있었다.
씨는 못속인다고 하더니 줄기가 튼실하고 잎이 창창하다.
새 화분에 분갈이를 해서 국화 화분 곁에 놓았다.
퇴근길에 슈퍼에 들려 시금치를 샀다.한단에 삼백원이란다.싸다.싸.
아무리 거저라도 우리집은 소식이라 한 단만 샀다.
피망이 한 개당 천원이 넘었다.비싸다. 비싸.
아무리 비싸도 우리집은 입이 짧아 한 개면 된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어둠속에 현관등만이 나를 위해 불을 밝혀주었다.
큰아이가 던져 놓은 도시락이 거실 쇼파에 떡하니 앉아 있고,
작은아이 신발주머니와 책가방이 거실에 편하게 누워 있었다.
식탁위에 노란 봉투?
올케한테 온 봄빛 실은 편지였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올케.
나도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형님이지만...
얼굴도 이쁘고 마음이 더 이이쁜 올케.(아부가 아니고 정말 이쁨)
아이 키우며,살림하며,대학을 다니고 있다.
미대를 나왔는데, 피아노 배운다고 다시 다닌다.
어릴 때 별명이 똥바가지인 고집스러운 남편과
깔끔하고 소녀틱한 시어머니 잔소리에도 고분고분 대답을 잘하며,
(대답 안하는 며느리도 많다고 들었음)
언제나 맑고 밝은 올케 얼굴이 편지안이 거울되어 보였다.
쌀 북북 씻어 쌀 트물 받아 놓고,
냉동실에서 열마리쯤 멸치 꺼내 멸치 국물 내고,
신문 한 장 펴 놓고 시금치 다듬어,
고추가루 반스푼 넣어 칼칼한 된장국만 끓였다.
그리고 막내아이와 둘이서 소박한 저녁을 먹었다.
"유채꽃이 노랗고,벚꽃이 벌써 피고,풀이 파랗고,여긴 봄이야!"
제주도에 여행가신 친정엄마의 전화를 방금(네시간 됨) 받았다.
목소리가 한 톤 높아 있으셨다.
좋으시겠다.
거실에 앉아 '여인천하'를 보는데 발끝이 시려 양말을 꺼내 신었다.
손 끝도 시리네...
오늘 바람은 무진장 쌀쌀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