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제가 돌아온 것을 반갑게 맞아주신 여러님들...
(답글을 달아주신 님들과 그외 모든 님들)
새삼 우리 민족은 정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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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걸친 입학시험을 끝내고 넓다란 대학 정문을 나서는 마음은
무척 가벼웠다. '이제 모든 게 끝났구나!'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명예롭고 돈 잘 버는(?) 의사가 되기위해
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보충수업등을 쫓아다니느라,
식사를 언제, 얼마나 했는지도 몰랐고, '4당 5락'이라며 육체적 성숙을
위해 꼭 필요한 잠마저 빼앗긴체, 그저 멍한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잊고 지냈던...결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지난 2년의 생활이
눈에 선했다.
그리고 갑자기 가슴을 치는 생각은
'내가 커서 아이를 갖게되면,
결코 이런 지옥 같은 생활은 없게하리라 !'
익숙하지 않은 자유가 갑작스레 몰려들었다.
새벽 5 시면 나를 깨우시던 어머니...
낮 12 시 까지 자더라도 아무 말씀 없으셨고,
난생 처음 담배도 물어보고, 술도 입에 대어보고...
통금시간이 다 되어 집에 들어와도,
"친구들이랑 놀다왔어요."하면 만사가 O.K.였다.
"나"를 모르던 상태에서 갑자기 어른(?)이 되어
새로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문득문득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입학자 발표가 있는 아침! 웬지모를 불안감이 몰려왔다.
자신이 만만했었던 영어와 수학 시험에서도 생각보다 많이
실수한 것 같았고... 수험번호 (3001)를 합하면 죽을 "4"자가 된다던
어떤 친구의 놀림도 꺼림칙했고... 조금 더 안전하게 "A" 대학 대신
"B" 대학을 택할걸 그랬나 싶은 후회도 들고.....
발표장은 인산인해였다.
성공과 실패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표정들...
그 틈을 비집고, 벽에 가로로 길게 걸린 하얀 종이 앞에 섰다.
'..... 2984, 2995, 2998, 3003, 3018,.......'
쿵~~
없었다 ! 분명 있어야할 '3001'이 빠져있었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며
집안의 장손, 장남으로 아무 꺼리낌없이 살아오던 나에게
처음으로 '실패'라는 느낌이 아프게 다가왔다.
이틀을 꼬박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믿어주신 부모님을 어떻게 보나?'
'친구들은 이 실패자를 어떻게 볼까?'
'.......'
(아주 후에 느낀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무의식적으로 여린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
'그 길로 가서는 안될 이유가 있을거야!'라는
운명론적인 사고방식을 갖게해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그래 ! 다시 해보는 거야. 재수로 안되면, 삼수라도...'
이틀만에 부시시한 얼굴로 방을 나선 나에게 어머니가 물으셨다.
"어떻게 할래?"
"재수해서 다음 해에는 꼭 붙도록 하겠습니다."
"재수?"
"녜!"
"...아버지 께서 이민을 가자 하시는데..."
"이민요?"
"응! 미국으로."
좋은 영어실력 덕분에
6.25 사변 때 부산 송정에 주둔하고있던 영국군의 통역장교로 근무하시고
그 이후로 무역회사에 다니시면서, 외국여행을 많이 하셨던 아버지께서,
외국생활에 대한 동경을 아들의 실패를 빌미로 실현하고 싶으신 거였다.
'좋은 곳에 가서, 실컷 공부해라 !" 라는 이유를 대시며...
"그리고 원한다면, 공부 끝내고 돌아와서 살면되지!"
(그 돌아온다던 것이 거의 30 년이 된 지금도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