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 내 몸과 정신이 끊임없이 물결을 탄다는 것이다. 물결의 높고 낮음과 강약이 내 손에 달려 있지는 않지만 적당히 몸을 맡길 줄 알거나 때로는 용기내어 바람을 이용해 보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은 삶이 준 열매인 것 같다.
이제는 컨디션 좋고 기분 좋다고 호들갑스럽게 인생의 의미를 논하면서 지쳐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일도, 이유없이 낙심되고 우울하고 몸이 힘겹다고 완전한 자포자기에 빠지는 일도 적어졌다.
이 시간을 지나보내고 나면 또 다른 시간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높고 낮음의 차이가 너무 심하거나 너무 잦지 않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시간이 너무 길지 않기를 기다릴 뿐.
한달반 여를 어둠과 추위 속에서 보냈다. 건강하게 겨울 넘기기를 간절히 바랬건만 덜컥 감기에 걸려버린 몸은 퍽이나 낙망이 되었는지 누워 있기만 원했고 자제력을 잃고 먹을 것만 찾아 집어넣었다. 정신력 또한 그를 달랠만한 처지가 되지 못했다. 붙잡을 것도 마땅치 못해 이물결 저물결에 흔들리고 부딪히며 아파하기만 했다. 해야할 일들을 마치지 못한 채 흐르는 시간을 허겁지겁 뒤쫓아가기에도 바빴다. 얼굴은 날마다 붇고 몸무게는 최고치에 이르고, 그렇잖아도 주눅들어 힘겨운 내면이 더욱 부끄러워하며 사람을 꺼려했다.
파도가 멈췄다. 구르고 멍들면서도 포기해 버리지 않은 보람을 거두는 순간이다. 첫 신호는 아직도 어두운 먹장구름 사이로 얼핏 얼굴을 내밀었던 햇살이었던 듯 하다. 누군가의 친절한 위로 한마디였던가, 어떤 이의 보이지 않는 기도였던가, 감동적인 글귀에 눈물이 쏟아졌던가,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텔레비젼에서 보며 나를 더듬어봤던가... 그렇게 얼핏얼핏 비치던 햇살이 구름들을 걷어내고 내 인생을 골고루 따뜻하게 비춰주는 순간, 파도는 잠잠해지고 난 평안한 물결에 몸을 맡겨도 된다. 몸과 맘이 함께 추스르며 일어날 준비를 하는게 느껴진다. 운동도 하고 음식도 조절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감사하고 평안하고. 가고자 했던 목적지도 다시 생각나고 점검해야 할 일들도, 만나봐야 할 사람들도 다시 기억나는 빛의 시간.
어둡고 아팠던 시간이 길고 힘겨웠을수록 털고 일어나는 시간 또한 더 감격스럽고 행복하다. 숨쉬고 걷고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시간. 내가 내 맘을 낮춰 겸손해질 수 있는 시간. 6주여 동안 불어난 5kg의 살도 되돌려 보낼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항해에서 어려운 순간을 한번 더 극복해낸 조금 더 노련해진 항해사가 될 것이다.
얼마 후에 난 또다시 슬럼프에 빠질 지도 모른다. 아니 빠질거다. 지금 멀쩡한 정신의 내가 어둠 속에 앉아 있게 될 나를 향해 편지를 써보고 있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기다리면 구름이 걷히고 비도 멈출거라고. 그걸 기다릴만한 보람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