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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음식 갱시기


BY 잔다르크 2002-01-13


정다운 음식 갱시기


입덧이 심할 적마다 
한 겨울에
어머니가 해 주셨던 갱시기를 제일 먹고 싶어 했다.
갈비찜이니 전복죽,
뭐 그런 비싼 걸 먹고싶다면야 이해가 가련만......


윤이 반드르르한 새까만 무쇠솥에
정지에 묻어논 물단지의 샘물을 퍼부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식은밥을 넣고
안방의 윗목에서 자라는 콩나물,
먹다가 먹다가 접시 한 귀퉁이에 붙어있는 신 김치,
텃밭에 묻어논 구덩이에서 칼로 찔러 꺼내온 무우 채썰고, 
고구마 대충 씻어 듬성듬성 넣고. 
멸치 몇 마리 던지고,
파 썰어 넣고,
한 발을 부지깽이 삼아 아궁이에 마른 나무를 밀어넣어면
죽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그 때
가을걷이 한 밀가루를 단지에서 퍼다 
되직하게 개어 숟가락으로 수재비를 던지면
양식 늘이는 데는 제격인 갱시기가 된다.
귀한 계란이야 있으면 넣고 없으면 그만......


겨울 햇살이 드는 남쪽을 향한 안채 마루에서
둥근 상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 그릇을 올린다.
통째로 떠다니는 작은 무우가 있는 동치미 국물을 한 가운데 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천방을 오가는 사람들, 
샘에 물길러 오가는 동네 아낙들,
뜨거운 죽 식히기엔 제격인 
한가한 시골의 겨울풍경을 감상하며 
후후!
갱시기를 목으로 밀어넣던 기억이 생생하다.


날씨만 추워지면 먹고싶은 생각이 간절해 지는데
혼자 먹으면 도통 맛이 없는 
정다운 음식이라
우선 이웃 사람을 청한다.
밀가루 수제비 대신
떡국을 넣고
주거니 받거니 
뜨끈뜨끈 한 걸 한 그릇 비우면 
삶의 고단함이 싸악 풀린다.


마침 
온 식구가 모인 방학인지라
점심으로 먹으려고 끓일라치면
편이 반으로 갈린다.
도저히 못 먹겠다는 요새 아이를 위해 
별 수 없이 
다른 식단을 고민해야 하는 이 서글픔...


"너그들은 비싼 어학연수보다 
아프리카나 저어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배고픈 기 어떤 건 지를 먼저 배아와야 한다카이!" 


야들이 궁시렁거리는 내 속내를 짐작이나 할런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