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자야~
병원일이 바쁜 모양이구나. 오늘 답장이 없는 것을 보면...
그래 전문적인 일을 가지고 있는 터이니, 한가로이 컴 앞에 앉아 글을 쓰기가 쉽지는 않을꺼야... 지난 번 너의 메일에 지금의 미국인 남편이 웅덩이가 나오면 다리가 불편한 너를 번쩍 안아 올린다는 말을 들으니,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잘 지내는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하구나... 너의 아들 동혁이도 끔직이 아껴주고 다독여 준다니 더더욱 다행한 일이고...
하지만 아직 믿음이 깊은 천주교 신자인 너의 어머님이 동혁이 아빠와의 이혼에 화가 나시고, 더구나 미국인 사위를 본 것에 마음이 상하시어 한국에 와도 아직 집에 들이시지 않는다니, 참으로 산 넘어 산!이구나... 그럼 미국에서 성당은 나가지 않니? 천주교에서는 이혼을 하면 적절한 사유가 아니면 영성체가 안되는데... 이제 생각하니 그것이 또 걱정이 되네...
광자야~
직장 생활하면서 네가 너에게 묵주를 사 준 것 혹시 기억나니?
어둡고 침잠되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암울함이 그 그림자를 졸업후의 직장생활의 시작으로도 지우지 못하였던지 한 1년간은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인생관을 버릴 수가 없었단다.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이 세상 아둥바둥 애쓰며 살아야할 이유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생활능력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생활전선에서 지지리도 고생만 하시는 엄마를 지켜보는 것도 힘겨웠고... 그냥 죽으면 그것이 최상의 선택인듯 여겨졌는데...
그래서 직장이 끝나면 이 약국, 저 약국을 들러 수면제를 사 모았었지. 그야말로 철없던 객기였지, 뭐~~~ 죽기에 충분한 양의 수면제가 이제는 모아졌다고 생각이 들어 회사 가까이에 있는 명동성당을 점심시간을 이용해 들러, 친한 친구들에게 줄 묵주, 십자가, 간단한 성물들을 샀지. 신앙도 없는 사람이 성당 안에 들어가 무릎 꿇고 지난 세월에 대한 참회도 하고...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냐구? 어떻게 되기는 뭘 어떻게 되었간?
친구들 하나하나 만나 말없이 성물을 하나씩 선물하고 택일만 하면 되겠구나 하였을즈음, 직장의 동료 남자직원이 소개시켜준 S대의 남자친구가 한없이 우울해져 가는 나를 수상히 여겨 다그치는 바람에 사실대로 이야기 하게되고, 그리고는 돈 투자, 시간 투자하여 열심히 모든 수면제는 모두 간단히 쓰레기통으로 휙~ 날라갔지 뭐~
솔직히 그 때 진짜 죽을 마음이야 있었겠니?
아니야, 어쩌면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지도 몰라~ 워낙 극단적이고 무서운 것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마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 사이트 같은 것 있었으면 군중심리 & 동지적 투합으로 정말로 콱! 이 세상 하직하였을지도... ㅎㅎㅎ
내가 오죽하면 나 닮은 딸 나을까봐 결혼하여 제발 딸은 안 낳았으면 좋겠다고 했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