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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을 사면서도...


BY 들꽃편지 2001-02-11

겉 표지도 보라색인 공책 한 권을 샀다.
문방구에 들어서니 수십가지 색의 필기구가 아파트같이 만들어진
방 속에 채곡채곡 누워 있었다.

몇년전부터 쓰던 공책이 이젠 더 쓸 자리가 없어서
오늘 슈퍼를 가기전에 문방구에 먼저 들렸다.
다른날은 아이들 학용품이 필요해서
생일 선물을 사려고 급하게 들리곤 했었는데,
오늘은 순전히 나만의 볼 일이 있어 찬찬하게 문방구 문을 열었다.

몇년전에 이 곳에서 공책을 샀기에 공책이 있는 자리를 알고
있었다.
겉표지는 단색. 두껍고 가벼우면서 쓰기 편한....
무엇보다도 가격이 저렴.
이런걸 미리 결정하고 왔지만 내가 그려 넣은대로 인생을 살 수
없었던 것처럼 내가 만들고 그렸던 공책은 없었다.
대부분 스프링이 달렸고...스프링이 달린건 만들 때 손이 많이 가서
그런지 비싸다. 스프링이 글씨를 쓸 때 걸리적 거린다.
겉표지가 두겹으로 되어 있어 고급스러웠고...표지가 한겹이면 충분
하고,속지만 안보이면 됐지 화려한 건 필요치 않다.
속에 있는 종이가 하얗고 맨질맨질했고...갱지처럼 누런 종이가
싸고 맨질거리지 않아야 글씨가 미끄러지지 않고 잉크가 쏙쏙 베여
좋다. 오랫동안 뒤적거려도 내가 원한 건 없었다.

"이렇게 하얗고 맨질맨질한 거 말구요.누렇고 겉 표지 예쁘지
않아도 되는데...그런거 없어요?"
"그런거 없는데요."
가격을 물어 보니 오천원이라 했다.
'으구,비싸라.누런 종이면 반값일텐데...'
예쁘고 정갈하게 쓰기 위해 공책이 필요한게 아니였다.
그때그때 내 느낌을 휙휙 써 놓기 때문에 저져분하고 어지럽게 쓴다
썼다가 지우고 다시 그 위에 겹쳐서 쓰고,몇 줄 쓰다가 다른 내용으
로 넘어가 쓰기 때문에 아주 정신이 헷갈리게 쓴다.
그래서 좋은 종이가 아니여도 된다.

사람들은 무슨일에서든 누구든 내 중심적으로 생각을 맞추고
결정을 해 버린다.
공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이렇게 고급스럽고 하얀 종이로
만들어야 가격을 더 받을 수 있고,그러면 이윤폭도 넓어지고...
요즘 얘들은 누런 종이보다는 겉표지가 예쁘고 깨끗한 걸 찾기
때문이겠고...
할 수없지 뭐.
두껍고 겉 표지가 요란하지 않은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겉표지색이 파랑과 보라와 회색.
파란색과 보라색중에 하나를 결정해야하는데 여기서 시간이 걸렸다
하루중에 나는 얼마나 많은 걸 고르고 결정하고 선택을 할까?
아침서부터 이부자리 밑에서 '일어날까? 말까?'그랬었고,
딸아이가 용돈을 달라고 하기에'오천원을 줄까? 통 크게 만원을
줄까?'그랬었고, 막내 아이 수영가방을 사면서'흰색보다는 초록이
눈에 띄어 잃어 버리지 않겠지...'하면서 흰색을 달라고 했다가
초록색으로 바꿔서 샀었다.

누가 그랬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또 누가 그랬겠지. 인생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하루를 산다고...
이 길이 더 나을 것같아 이 길을 선택해서 살면서도, 저 길이 저
쉽고 꿈도 많았겠지 하면서 안타까운 발길질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보라색을 선택했다.보라색을 좋아하면 외롭다고 했는데...
오늘은 보라색이 나를 지배했다.
작은 내 공간을 마련하고 내 마음은 하늘같았다.
하늘이 보라색이였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