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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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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란


BY 얀~ 2001-11-24

아이가 아프면 젤 먼저 힘이 빠지는게 엄마다.
아들을 떠올리면 참았던 눈물이 난다.
태어나 물이나 분유를 먹기만하면 토해서
소아과마다 다니면 애들은 다 토한다고만 하고
별 이상이 없다고 돌려보내기 일쑤였고
밤에 잠을 못자고 보채서 친정엄마는 밤샘을
계속 했고, 난 일하고 집에 들어가 새벽녁에
몇번의 채근에 일어나 애들 들쳐없고
이불장의 문을 열고 이불에 기대어 서서 졸았다.
몇군대의 유명한 병원을 다녔고
오주째 성모소아과에서 바로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담날로 수술을 받았다.
검사결과 유문협착으로 위에 있던 내용물이
소화를 해서 내려가야 하는데 막혀서
그대로 토하는 거였다.
3.2키로의 몸무게로 수술실에 들여보내고
돌아서 눈물 닦으며 일을 해야 했다.
모진 엄마여서가 아니라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강하게만 몰아댔다.
힘든건 작은 몸에 온통 피 뽑고, 목에서 피를 뺄땐 자지러진 아이의
울음에 피눈물을 삼켰다.
손에 쥔것도 없고 흔들리는 데, 위로의 말보단
온통 질책 뿐이었다.
일하면서 듣는 말들은 침통했다.
컴퓨터 앞에 넘 오래도록 일해서 그렇다는 등,
커피를 많이 마셔서 그렇다고,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랬다며 혼났다.
임신해서 낮잠은 잘 수도 없었다.
세평방엔 빛 한점 없었다. 남아 있는 오기로 버티기엔
힘들었던가 보다.
밤에 잠들기는 힘들었다. 세네 번은 선풍기를 틀어도
깨어나야 했고,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밥보단 과일에 의존했고
졸음을 피하기 위해 커피를 많이 마셨지만
누구도 날 이해해주는 이는 없었다.
자식이 아프면, 어미는 독해지는 모양이다.
수술을 받고 이틀째 30cc의 보리차를 빨고
생글 생글 웃는 얼굴을 보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난 잊지 않고 있다.
그 미소에 힘들었던거 다 잃어버리고
헤벌쭉 웃었으니깐.
탈장이 시작되고 내내 고생해서
버티지 못하고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먹은걸 제대로 배변을 못하니 어쩔수 없었다.
소아과에서 검사를 받는데 감기에 감염되어
수술이 지연되고
삼일이나 금식하고
소아과아 외과의 씨름때문에 결국은 남편이
눈물을 흘리며 소아과 여의사에게 물었다.
'만약 당신의 아이면 어쩌겠냐고?'
"내 자식이면 수술시킬꺼예요'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수술 동의서를 쓰고
외과로 애를 내려보내고
오후에 수술실에 들여보냈다.
수술실에 나와서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
마취에서 깨어 나야 하는데 들어가서 애를 깨워야 한다고
잠들면 안된다고
내가 할 일은 마취실 옆에 가서
아픈 애들 계속 흔들고 두들기고 패서 깨우는 일이었다.
일단 깨어서 울긴 하는데 눈이 퉁퉁 부어서 눈동자가 안보였다.
일단 외과 병동으로 옮겨서 기다렸다.
감기때문에 등을 삼십분마다 두들기고
가슴엔 거즈에 미지근 한 물로 담갔다
마사지를 계속 해주었다.
소아과 여의사가 고마웠다.
밤새 2시간 단위로 외과 병동으로 찾아와 눈이 뜨였는지 보러왔다.
꼬박 새고 남날 10시정도 눈을 떳다.
외과의사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울 아들넘 대단하죠 견디고 깨어났으니..'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첫돌이 돌아오기 직전에, 외할아버지 따라 포장마차 따라갔다가
오뎅국물을 뒤집에 썼다.
친정아버지와 동시에 병원에 입원했는데 끔찍했다.
아들 녀석은 얼굴과 손과 등을
아버지는 팔을 데었는데
친정아버지는 손자의 얼굴이라 본인의 상처에 대해선 생각할
겨를도 없었는지라 수술을 몇번이나 하게되었고
성모병원의 의사나 간호사는 인사를 이렇게 했다
'이 녀석 별걸 다한다고..'
다행인건 아들 녀석 얼굴은 한 꺼플 벗겨내고
흉터가 없다는 것이다, 얼굴엔 다행이도.
소아과 외과 성형외과...이렇게 꼬리표를 붙이고
백일사진과 돌사진이 없이 그렇게 커갔다.
친정엄마가 말했던
'닌 애 죽을까봐 사진도 안찍는거냐'란 말이 늘 걸리지만
어떠랴 지금은 건강하고 잘 버티고 자랐으니.
흐흐흐, 그게 다가 아니다.
성형외과에서 퇴원을 하고 나니. 애가 고열이었다.
제때 예방접종을 못해서 홍역을 앓는거였다.
소아과를 놀러다녔는데, 그때 옮았는 모양이었다.
병원에 갔다.
'홍역인데 입원할래요?'
"해야 하나요?"
'예전엔 약먹고 집에서 치료 하기도 했는데..."
'입원 안시킬래요'
혹, 힘들다는 말을 하면 이렇게 말해준다.
고통이 있었으니, 더 가슴속에 담겨있는거 아니냐고.
아들녀석 아프지만 말고 씩씩하면 바랄 것이 없다하고선
지금 안달 복달 욕심을 부린다.
술을 마실때면 피시식 웃는다, 엄마는 욕심쟁이란다.

오늘 이멜을 받았다.
지금 그 기분을 느끼고 있을 초보 엄마 아빠가 마음에 걸려
새삼 감추고 있던 생각들이 울컥울컥 삐집어 나온다.
잘 견뎌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