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자야,
드디어 다시 목소리를 들었구나. 그냥 들으면 너인지도 모르겠다만..... 먼 소녀(?)시절 중.고등학교때의 추억속에 깊이 각인된 너와의 우정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힘들고 어두웠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모든 것이 서로 상반되고 이질적이기만 했던 너와 나였는데, 어떤 힘이 우리 둘을 친구로 묶어 주었던 것이었는지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왕창 어렵고 가정환경이 어둡기만 했던 나와, 부유하고 안정적인 가정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고 있던 광희와 나는 사실 크게 가까와질 이유가 별로 없었는데.... 게다가 너는 이과, 나는 문과로 분류되어 공부를 하였으니 말이다.
웃기는 이야기.....
소영이도 거의 10년만에 만난 것 같은데, 그 녀석 왈! 마치 내가 몸이 불편한 광희를 위해 대단한 정성이라도 들인듯이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내 참 우스워서~ 천만의 말씀, 만만의 말씀이지.
광자에게도 이 이야기는 매우 새삼스러울 것이라 여겨지는데 나에게 있어서 광희는 암울하고 어려운 나의 일상에서의 돌파구였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 당시 내가 속해 있던 현실과는 조금 다른 풍요로움의 또 다른 공기에서의 숨쉼의 제공자였다고나 할까?
있잖아~ 내가 처음으로 샴퓨를 써 본 것이 너의 집이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그 이외 영어가 잔뜩 씌여있는 그 사용법조차 아리송한 여러 세제, 물건들이 너의 2층 화장실에 그득하였었는데..... 그 당시 옥상에 수영장이 있었던 것도 너무나 경이로웠고, 온통 광이 반짝반짝 나는 너의 집의 청결함과 정돈됨, 그저 좋아보이기만 하는 오디오, 학교에서 지척인 너의 집까지 같이 타고 가던 검은색 자가용, 아무튼 온통 좋아보이기만 하는 것들이었단다.
(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계속 웃고 있는 것 아니? 이제 50이 다 되어 이런 회상을 하니 즐겁기도 하고, 거꾸로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한번 다시 되돌아가 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것은 2차적이며 부수적인 이유였고 진짜 내가 너를 좋아하며 학교 안에서 이과반으로 너를 ?아가고 연세대로 또 ?아가고 하였던 것은 신체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도 강렬했던 너의 자아 발전의 욕구와 오기, 당당함에 있었을 것이다.
너를 pick up하러 온 자가용을 그냥 보내고 같이 광화문에서 너의 집까지 같이 걸어 가곤 하였던 것 기억나니? 사실 별 것도 아닌데 그 기억이 왜 이리 생생히 떠오르는지.... 그리고 2학년때 수학여행시 나는 경제적인 이유로(우리집은 왜 그렇게 가난했는지 몰라... 딸 수학여행 보낼 돈도 없고 말이야...) 너는 몸의 불편함을 이유로 둘다 학교에 등교하여 무슨 제과회사 견학도 하고, 같이 덕수궁인가 가서 사진도 찍고 했는데 생각나니? 참, 카메라도 그 때 처음 너에게 빌려서 사용해 보았지요~
또 하나 지금도 내가 주책을 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는 대학준비를 하느라 과외하랴, 또 무슨 영어공부하랴 바쁘기만한데, 나는 눈치도 없이 너의 집까지 쫓아가 너의 방에서 혼자 죽치고 앉아서 음악을 듣고 하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너의 엄마가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 와하하! 정말 옛날이야기이네~~~
내가 결혼하여 자네가 세브란스 있을 때 잘난 아들 놈 골골하여 김길영(?)선생님 열심히 쫓아다니던 중, 자네가 미국 가고는 그만 소식이 끊어졌으니 거의 20년만의 소식전함인데 어쩌다 보니 온통 지난 시절의 회고 일색이 되어버렸네요~
그래,우선 잃었던 친구를 다시 만나 이렇게 소식을 전하게 되니 반갑고 감사하다. 다시 소식 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