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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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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와 함께 손잡고 걸었다.


BY 들꽃편지 2001-11-24

무수히 많은 안개가 아침 창밖에 서성이던 어제였다.
대수롭지 않게 아침을 보내고 한 낮에 밖을 나서니
그때까지도 안개는 떠나지 않고 나를 맞이한다.

기다림에 지쳐 떠나지 않은 안개를 보며 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안개는 나와 같이 나무그늘밑을 지나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우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함께할 수 없을 때 무슨 말이 필요할까...
텅빈 버스를 타면서 뒤돌아 보지 않았다.
안개에게 "안녕"이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항상 앉는 창가 자리에 앉아서 손도 흔들지 않았다.

흐린날이다.

아침에 안개가 끼면 화창한 날이 예감된다지만
어제는 틀렸다.
음산하고 우중충한 하늘이 저녁까지 풀리지 않았다.

오후내내 일을 하느라 안개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퇴근무렵...
안개는 내 앞에 떡 벌어지게 가로 막고선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한시간 뒤의 인생사를 알 수 없듯
안개에 휩싸인 세상은 몇미터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을 만나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던 날 새벽 한계령엔
안개만이 자욱했었다.
안개등을 키고 일미터앞 시야만을 믿고
한계령을 넘으며 많은 생각을 했었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하나의 문제에서
난 수없이 망설였고 혼란스러웠다.
친구와 술과 노는 걸 많이 좋아한다는 걸 알고서
내가 그 부분까지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한치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낀 한계령처럼
결혼생활의 앞은 전혀 알 수 없는 미로의 길이였다.
날 많이 사랑하고 내가 편하다는 이유만을 믿고
무작정 떠났던 안개낀 굽이길...

그래도 시간은 가고 나이가 먹 듯...
그래도 내가 탄 버스는 달려가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내려다 주었다.

그래 버릴 수 없을 땐 같이 걸어가는 것이 상책인 것을...
안개와 같이 손잡고 걸어가는 길은
꿈을 꾼 다른 세상이였다.
육중한 아파트도 비어버린 나무도
아직도 질기게 남아 있는 나뭇잎도
다른 세상에 온 듯 했다.

비가오지 않아도 안개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눈이 오니 않아도 푸설푸설한 눈이 내리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차가운 기온...
이렇게 또 한 계절이 가고
또 한 계절이 오겠지.

어제는 안개와 함께 손잡고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