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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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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잎을 씻으며.....


BY 1song2 2000-10-10


어릴 땐, 호박을 무지 싫어했다.

심지어는 호박전, 호박범벅까지도...

못생긴 여자의 대명사하면, 호박, 옥떨매! 였으니까....

요즘은 폭탄! 혹은 핵폭탄!이지만...

결혼을 하고, 살림을 살다보니, 여자와 호박은 뗄래야 뗄 수 없

는 것 같다. 애낳고 먹은 호박소주 말고도...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란 신랑은 신토불이 입맛이다.

예전 시골에서 시엄니가 해준 음식에 입맛이 든 탓에...

우선 된장끓이는 방법부터 달랐다.

친정엄니는 멸치맛국물('다시'라는 말은 일본 말이라네요?)에

된장을 풀어 두부, 파 등등 여러가지를 넣고 된장을 끓였었다.

시엄니는 된장을 많이 넣고 끓인, 걸쭉하고 짜디 짠 된장을 쌈

용으로 쓰는 거 였다. 얼마나 낯선 된장이든지...

쌈으로 싸면 묽은 된장이 주르르 흐르고...또 시퍼런 배추잎을

싸먹질 않나? 요샌 내가 더 찾는다. 배추쌈!

호박잎이 나올 철이면, 호박잎 쌈에 걸쭉한 된장을 끓여달란다.

남편들은 자기 엄마가 해주던 음식, 그대로 해주면 제일 좋아하

는 것 같다.



시골에서 보내온 작은 호박잎의 가시를 까고, 호박잎을 씻으며,

호박이 우리에게 주는 풍요로움과 우리 조상의 현명함에 고개

를 숙였다. 먹을 것 부족하던 시절에 호박과 호박잎은 고마운

밥 반찬이 아니었을까?

노랗고 커다란 꽃하며, 아무도 돌보는 이 없어도, 홀로 무성한

잎과 탐스런 열매를 영그는 호박, 그 잎 또한 밥상에 오르는

잎들 중에서 크기로는 으뜸이 아닌가?

호박, 두부, 파 숭숭 썰어넣은 된장국을 먹어도 좋고,

짜디 짠 쌈된장에 호박잎을 싸먹으면, 밥 한그릇 금새 뚝딱이

고, 갈비집에서 이빨 부서지게 갈비를 뜯고도, 입가심으로 보글

보글 끓는 된장국에 밥 한 공기면 소화걱정 끝!

호박잎을 손으로 죽죽 찢어서 끓이는 호박잎국도 일품이고...

누런 호박 속을 벅벅 채로 긁어서 전을 부쳐 먹으면, 들석지근

한 단 맛이 입안 가득 고인다.

길고 지루하던 겨울밤, 주전부리 많지 않던 시절, 밤새도록

호박씨 까먹으며 할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듣지 않았을까?

가진 것 많고, 높은 자리 앉은 사람에게야 이 호박이나, 호박잎

이, 기름끼 좔좔 흐르고 이름마져 혀꼬부라지는 서양음식과 어

찌 비기겠으며, 빵에 고기 한점 덜렁 끼운 인스턴트 식품, 방부

제와 농약, 비료 범벅인 농산물이 지천인 요즘 세상에 호박은

더 없이 좋은 천연 농산물이다.

나이가 들고 해가 갈수록,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잎 무성하고,

열매를 거두며, 땅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감이 절

로 생기고, 나또한 자연을 닮고 싶고, 내 입맛도 토종이 된다.

누가 날더러 촌년이라고 욕해도 난...

호박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