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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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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BY 염원정 2001-10-07


《 이혼 》
                                         염원정


: 단 몇분전만해도 극히 정상이었던 두 사람은
: 발끝에서 노는 혈압을 머리로 끌어올려 :
: 계란을 깨트리면 후라이될 정도로 얼굴을 시뻘겋게 달구더니 :
: 쿠당쿠당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한 심장을 진정시킬 생각도 :
: 않고 눈에 불을켜고 으르렁 거렸다. :

\"도장 챙겨!\"
[당신이나 잘 챙겨! 핑게로 도장 안가져 왔다고 그러지 말고]
\"지금부터 이혼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요!\"
[그래, 좋아! 그럼 이제부턴 남이다?]
\"반말하지마요? 남이래매요오?\"
[그렇군! 남이군!]
\"아~ 자유가 내 곁으로 오고있다!
이혼한다고 생각하니 자유가 눈앞에 보이네...\"
[그럴 시간 있남? 자유가 보이는데 서둘러야지?
이혼 서류 준비해야 해야하니까
니 오늘 동작구청에 가서 호적초본 띠어왓!]
\"띠어왔? 왔? 말... 막 놓네?\"
[띠어오셔어어~]

두 사람은 화가난 상태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뱃고보니
이혼하자는 말까지 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 말을 실천할 단계까지 온 것이다.

그녀는 부산하게 왔다갔다하면서
: 신경질적으로 옷장문을 열어 외출복을 꺼내 입고,
: 구두를 꺼내 신었다.
: ( 설마....붙잡겠지...)라고 생각했는데

: 그녀의 남편은 출근할 생각도 않고
애꿎은 담배만 빨아대며 외출분비가 끝난 그녀를
밖으로 내몰았다.

[서둘러! 오늘로 이혼절차 끝낼 수 있게!]

: 그녀는 어쩔수 없이 집을 나왔다. :
: 속 좁아 터진 남편과 같이 사느니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것이
좋을 거라고
속으로 최면처럼 되뇌이며
: 호적초본을 띠러 총총........전철역으로 갔다.


그녀는 유난히 크게 \"노량진!\" 이라고 매표원에게
말하고는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계단을 뛰다시피 내려가
전철에 몸을 실었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는 천정에 매달린
손잡이로 균형을 잡고 창밖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서너 정거장을
지나치면서 생각했다
\'이 혼 ...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들...
시어머니 친정 부모님 그리고 친척들...난리나겠지?\'
그녀는,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말처럼 이혼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이혼이 당사자 일로만 한정된 것이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자유~~가 보이고, 마음놓고 혼자라는 세계에서 누구의 간섭도
안 받고 멋지게 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긴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얻는것 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금이라도 병신처럼 씨익~~웃고 원점으로 돌아갈까?
......아니야...버티는데 까지 버티는 거야~!
이런 저런 생각에 다시 서너정거장을 지났을까?


[저..시간있어요?]
느닷없이 굵고 힘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고
그녀는 잘못하다 들킨 어린아이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에
한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며 웃고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는 쌀쌀하게 되물었다.
<저요?>
[예.]
[잠시 내려서 같이 커피한잔 하고 싶어서요.]
목소리가 겁도 없이 큰 그 남자에 지지 않으려는 듯
그녀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전... 커피 안 좋아해요!>
다소 매몰차게 대꾸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규칙적으로 울리는 작은
소음들을 누루고 전철안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약이 바짝 오를대로 오른 그녀는 갈증에 목이 말랐고
마른침 꼴딱이며 참고 있던 중이니
커피한잔 하자는 그 남자의 말은 그녀를 더욱 갈증으로 몰고갔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좋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그럼 홍차라도....]
다시 한번 청하는 그 남자에게
......까짓 사준다는데...못 먹을거 없다고 속 계산을 끝내고
대답을 하려고 창에 둔 시선을 거두다가
앞에앉아있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는 눈은 말했다.
( 별종이네....)
그녀는 전철안 사람들 눈이 자신에게 쏠려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 무료하게 전철 바퀴 구르는 소리만 듣던 사람들은 호기심 찬 눈
: 으로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할까하고 유심히 귀를
: 귀우리는 눈치였고,
: 서있는 그녀 앞에 앉아서 고개를 숙인채 꼼짝않고 있던
: 머리에 기름이 반지르한 제비같은 아저씨는 자신의 눈을
: 그녀의 검은 구두 를 시발점으로 종아리를 거쳐
: 히프에 눈을 잠시 멈춘 듯 하더니 허리와 가슴을 뛰어넘곤
: 막바로 그녀의 얼굴에 내리 꽃았다.
: 잠자는 형색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던 젊은 청년도
: 대화의 두 주인공 얼굴이 궁금해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
: 또, 책에서 눈을 안떼고 있던
: 눈과 입만 빼곤 여드름이 점령한 얼굴의 남학생이
: 드디어 그녀에게 한눈을 팔았고,
:
: 그곁에 앉아있던 50대의 아주머니도 질세라 흘끔거리며
: (...세상 말세로군...)하는 투로 쳐다보고 있었다.


[ 망설이지 마시고 기회는 한번입니다! 잘 모실테니,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요!]
다시한번 똑똑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 좋 아 요...>
그녀는 확실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말하곤
정차하던 전철의 움직임에 몸을 비틀거리며
그 남자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행동이 모든 사람들이 지켜본다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모르는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그 남자의 팔장을 꼈고 그 남자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젠 모든 사람들이 노골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두 남녀를 흘끔거리며 일행인 듯한 사람과
뭐라고 속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남자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전철이 정작 가려던 목적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남자를 따라
그녀와 그 남자에게 한껏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던 사람들을 뒤로하고..
총총... 내렸다.

그러자 그 남자는 그녀를 꼭 감싸안으며 말했다.

\"이 바보야, 밥이나 먹자 배고파 죽겠다!\"
\"참나, 누가 바보인줄 모르겠네...이혼하자고 해놓고 붙잡는
바보가 누구보고 바보래?\"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이혼을 생각하던 그녀를 싣고 무겁게 덜컹거리던 전철은 그녀가 도중하차를 하자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라도 한 듯 가뿐하니 날개를 단 새처럼 가볍고 경쾌하게 꼬리를 흔들며 먼 시야로 사라졌고,


두 사람이 타고 있던 전철안 사람들은
필름이 끊겨 더 이상 볼 수없어진 영화를 보던 사람처럼 그녀와 그 남자가 벌일 ?...(다음) 행동에 대해
아쉬우나마 나름대로 상상의 날개를 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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