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늦은 아침잠에서 깨어보니
세상은 온통 하얀눈으로 뒤덮혀있고 하늘에선 계속 하늘하늘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올들어 처음으로 풍성히 내리는 소담스런 눈이었다.
눈은 사람의 마음을 참으로 낭만적으로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다.
밤새도록 내린눈이 한낮이 되어도 그칠줄모르고 하루종일 내릴태세여서
며칠동안 춥다고 장보기를 미뤄와 더이상 먹거리가 없기에 눈발을 헤치고 장보기에 나섰다.
신랑과 둘이 우산을 쓴채 눈길을 걷는것이 몇십년만의 처음인것같았다.
가로수는 온통 하얀눈을 뒤집어쓴채 눈꽃을 피워내 참으로 아름다웠고 온통 하얀세상으로 변해버린 풍경을 바라보노라니
갑자기 잊혀졌던 연애시절이 떠오르며 마냥 마음이 따사로와졌다.
연애할때 무조껀적인 눈먼 애틋한 사랑에서
결혼초 티격태격 내사람만들기 쟁탈전이 벌어지더니
아이 하나둘 낳고는 사는데 바빠 서로 무덤덤해 지더니
어느새 그 무덤덤에 익숙해져 늘 그래왔던것이 되어버린 삶이었다.
소담스런 눈송이들은 잊혀졌던 그리운 감정들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고 있었다.
이렇게 눈 오는날엔
신랑과 손을 꼭잡은채 하염없이 눈길을 걷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러 향긋한 커피내음에 언 몸을 녹이던 ,
눈덮힌 세상도 풍요롭고 우리네 마음도 풍요로왔던 연애시절이 떠올랐다.
우린 눈발이 날리는 한우산속에서 서로 마주 바라보며 ,
그동안 여유없이 꽁꽁 숨겨놓았던 감정들을 어루만져 금방 연애시절로 되돌아가 애틋해져있었다.
세월이 흘러 서로 눈가에 주름은 살짝 잡혀져있지만,
마음은 연애시절로 후딱 되돌아갈수있어 실로 오랫만에 맛보는 애틋함에 가슴이 다 시렸다.
아무런 연이없던 세상에 수많은 모래알만큼 많은 사람들중에서 만나
아이낳고 수십년 동고동락하며 세월의 짐을 함께 이고지고 살아온 동지로서
이젠 연애시절의 눈먼 사랑도 아니고 신혼초의 철없음에서 벗어나 완전한 하나가 되어가는 우리네 삶에
살아가면서 새록새록 정이붓고 그리움이 쌓여간다.
신랑에겐 이젠 서운함도 원망도 미움도 없다.
대신 이해와 사랑과 애틋함이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신랑의 모습에서 자꾸 측은한 마음이 드는걸보면 나도 이젠 어쩔수없이 나이먹어감을 느낀다.
이다음 호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서로 따스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옛이야기 나눌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는 삶이 되리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