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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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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으로 떠남


BY 임진희 2000-11-10

핸들을 잡은 손이 떨렸다.

굵은 빗방울은 와이퍼의 움직임도 아랑곳 없이 빗물로 커튼을

드리운듯 흘러 내리고 지영의 얼굴에 두줄기 눈물이 쉴새 없이

흘러 내렸다.

오늘이 그와의 마지막 결별의 날이 였다.

그를 사랑 했었던가.

뒤돌아 보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그를 보냈다.

도저히 앞을 향할수 없어 차를 공원으로 몰았다.

아파트 옆 공원은 비에 젖은 낙엽이 아프도록 누워 있었고 지영

은 시동을 끈채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었다.

지영이 준이를 만난것은 일년 전이였다. 이미 삼십대를 넘긴 준

이는 집에서 결혼을 서두르고 있었고 지영은 외동딸이였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누워 있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한번

도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고 정성껏 보살펴 드리고 있었지만

언제나 홀로 돌아 앉으셔서 먼 산을 보시며 일찍 죽은 아들을

생각 하며 눈물 짓기도 했다.

지영이가 여고 시절 세살 위인 오빠가 어느날 갑자기 주저 앉아

일어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현대 의학으로도 힘든 병이라고 집에서 요양 하라고

했는데 지영이가 대학에 합격 하던해 갑자기 죽고 말았다.

아버지는 누운채로 벽을 보며 눈물을 흘리셨고 어머니는 지영이

앞에서 애써 눈물을 참으셨다.

그런데 지영이가 사랑 하는 사람이 생기고 나서 어머니는 조용한

시간이면 무언가 말을 할듯 할듯 하면서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으셨다.

준이 부모가 지영이를 만난뒤 결혼을 서둘렀다. 아버지는 학교

에서 근무 하실때부터 인품이 좋다고 소문이 나셨고 지영이 모친

또한 현숙한 여자라서 딱이 트집 잡을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뇌졸증의 후유증인줄 알고 계셨다.

생활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상가가 몇개 있어서 걱정 없이

지낼수 있었다.

어머니가 지영이를 마주 하고 이야기를 꺼낸것은 준이가 결혼

날을 잡는다며 돌아간 날 밤이다.

지영아 ,엄마말 잘 듣거라, 아버지는 중풍이 아니란다.

현대 의학으로도 어쩔수 없는 유전병이야. 엄마가 결혼 하기전에

할머니도 똑 같은 증세로 누워 계셨는데 중신아비가 중풍인줄

알고 엄마를 중매 했는데 결혼식 날 아침에 청천 벽력 같은 말을

들었단다.

할머니 병이 중풍이 아니고 유전병이라고, 집안이 발칵 뒤집어

지고 결혼은 취소 해야 된다고 난리를 쳤지만 이미 친척들은 모

여 들고 동네 사람들도 초대받고 다들 모이는데 정말 난감 했단

다.

그때 엄마는 결심 했지. 이것도 내 운명이다 . 받아들이자고.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펄쩍 뛰었지만 몰려드는 손님들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고 또 내가 고집을 부리니 하는수 없이 결혼식을

치뤘지.

외갓집 마당에서 치룬 결혼식은 외할머니의 한숨속에서 끝이 났

지만 엄마는 행복 했다.

아무리 유전 병이라도 내 대에 발병하지 않을것 이라는 확신

같은것도 있었지.

그러나 오빠도 그렇게 가고 엄마는 오빠를 강물에 재로 띄우며

처음으로 후회를 했다.

내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불쌍한 오빠를 태어나게 했다고.

이제 지영이 너에게까지 아픔을 주고 싶지 않고 우리 욕심 때문

에 준이네 집까지 피해를 줄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털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 했다.

엄마는 말을 마치고 오열 했다. 수십년 동안 참고 참아온 설음

덩이를 토해 놓는 것처럼..

지영은 귀가 멍멍 했다. 꿈을 꾸고 있는것 같았지만 현실이였다

이런 세상에도 아직도 나을수 없는 불치병이 있는것일까.

암 이라면 수술도 할 수있고 치료라도 받을수 있을텐데 이 병은

고칠수 없단 말인가.

엄마를 보지 않고 지영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눈이 붓도록 울었

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마치 지영이의 설움을 알기라도

한듯이..준이와 마주 앉았다.

영문도 모르는 준이는 지영의 얼굴을 보며 사랑스러운듯이 바라

보며 웃고 있었다. 나, 결혼 할수 없어, 작은 아버지가 미국에

들어 오라고 연락이 왔고 지난 여름에 연수 갔을때 그쪽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 하기로 했어,

이게 무슨 소리냐고 황당한 얼굴을 하던 준이는 지영이의 다음

말을 듣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나 그 남자에게 몸을 허락 했단다. 너 하고 결혼 하겠다고 한말

용서 해줘 , 아니 용서 해줘야돼.

준이는 침통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그대로 돌아서 나갔다.

다 거짖말이지만 미국에 있는 작은집에 가는것은 사실이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수 없어서 였다.

작은 아버지는 아직 아무런 증세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가족의 병력은 알고 계시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 한뒤 작은 엄마의 동의를 얻어 불임수술을 받으셨

다고 엄마가 말씀 해 주셨다.

사랑이 이런 감정인줄 몰랐다.

준이가 사라져간 길을 하염없이 바라 보며 사실을 말해 주지 못

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만일 집안의 병때문이라고 하면 마음 여린 준이가 떠나 갈것

같지 않았기에 거짖말을 한것이다.

준아 행복해 그리고 사랑 했어.

비는 그녀의 가슴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차창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빗물로 커튼을 드리우고 지영은

시동꺼진 차속에서 눈을 뜬채 꿈을 꾸듯 앉아있었다.

운명은 대를이어 옥죄고 있는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