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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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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액이 빠져나간 자리엔 죽음이!!


BY 한이안 2013-09-02

몸의 진액이 다 빠져나가면 죽음이 그 자리를 차지하나보다. 약마저 끊고 버텨내고 있던 내 몸은 꼭 마른 장작 같았다. 몸무게 37Kg. 조글조글한 껍데기만이 달랑 뼈를 덮고 있었다. 다리는 조금만 힘을 주어도 쥐가 났다. 자다가도 쥐가 나서 수시로 깨어나곤 했다.

혈당이 올라가는 것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내게 언니는 당뇨라도 다들 먹더라. 너처럼 굶지 않아.’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에 대한 내 반박은 제법 논리적이었다. ‘약으로 조절이 되니까 그렇지. 빼짝 말라 약발도 안 타나나는 나와는 달라.’

난 오로지 혈당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덜 먹으면 올라갈 혈당이 줄어드니 나아지겠지. 그게 내 생각이었다.

큰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란 언니의 말도 난 싹둑 잘라냈다. 그러다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라 하면,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몸이 성할 때도 병원에 가서 검사받는 것은 죽어라 싫었던 나였다. 어지간한 감기는 맨몸으로 버티고 병원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고 살았다. 난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내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은 처음엔 제법 단단하게 나를 지탱해주었다. 그랬던 내 의지가 날개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죽음은 내 안으로 성큼 들어와 주저앉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는 게 고집이다. 내 고집은 그 생각을 내려놓지 못했다. 데려갈 테면 데려가 보라고 하늘에 대고 중얼거리면서 난 또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섰다. 걷는 것도 힘겨운 내가 성주산에 가서 솔바람을 마시고 오자는 생각으로 매일 같이 발도장을 찍고 오기 시작했다.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기도 하고, 약수가 나오는 암자 입구에 앉아서 솔바람을 들이마시다 내려오기도 했다. 숲에서 나오는 바람을 들이마시면 안이 편안하면서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마음은 하루 종일이라도 그렇게 앉아있고 싶었다. 한데 난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런 내게 한 시간 앉아있는 것은 지나칠 정도의 욕심이었다.

하나 얻은 게 있다면 내 위에 열이 무지 많다는 거였다. 난 산에 가면 11월의 차가운 약수물을, 집에서는 약수물을 얼려 녹인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탈이 나야 정상이었다. 한데 내 안은 잠잠했다. 외려 달아오르는 게 진정이 되는 듯 시원할 뿐이었다. 잠자리도 전보다 편해졌다.

난 또 의사 행세를 했다. 그래. 내 안에 열이 가득한 거야. 그때부터 난 차가운 것만 가려 먹기 시작했다. 음식도 소양인인 내 체질에 맞춰 골라 먹었다. 내 몸의 열, 위에 가득한 열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 모든 게 움직여갔다. 그것도 언니는 못마땅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몸이 바짝 마르니 침도 나오지 않았다. 혓바닥이 뻑뻑했다. 난 그 상황에서도 형제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목소리를 키우고 멀쩡한 척을 했다. 그러면 내 목소리에 안심하면서 전화를 끊고는 했다. 친구들한테도 마찬가지였다. 난 글을 쓰면서 잘 지내고 있는 걸로 그들에게 가 닿았다. 죽지 않고 살아서 목소리가 쌩쌩하게 들려오니 친구들도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내 몸에서는 진액이 다 빠져나가고 있었다. 점점 걷는 게 더 힘에 겨워지고 있었다. 산중턱까지 오르는 것을 그만두고 약수터까지만 다녀오기 시작했다.

난 그 모든 게 혈당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약으로 조절이 불가능한 그 놈의 혈당만을 난 탓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