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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BY 만석 2010-03-03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엄니. 정말루다가 간소하게 삼색만 할 겨요.”
  “이~잉. 그려.”
  아버님 기일이라 장을 보러 나가면서 엄니에게 던진 말이다. 장 가방을 들고 나오는데,
  “편은 안 하남?”
  “…….”
  “떡 없는 제사는 지내지 않는 법이라는디……”
  “누가 그려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일 텐데, 엄니는 꼭 누군가를 물고 들어가는 습관이 있음을 알고 볼멘소리로 되묻는다.
  “영규 할멈이 그랴.”
  아니, 간소하게 하자니까 그러라고 하시더니……. 엄니는 늘 이런 식이시다.
  “간소하게 하라는 겨요, 제대로 하라는 겨요?"
  “니 맘대로 혀~.”
  “그게 어디 지 맘대로 하라는 소리유? 편도하고 경단도 하고 다 하라는 말씀이시제?”
  “걍 그렇다는 말이여.”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신 건 안다. 그런데 혼자서 어쩐다?
  “고모들 누가 좀 일찍 온다요?”
  시누이들이 다섯이니 하나쯤은 일찍 와도 좋으련만.
  “오긴 누가 일찍 오겄어.”
  “그라믄 언제 방앗간 다녀오고 부침개 굽고 한데요?”
  “걍 둬.”
  그냥 두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지금 와서 혼자 어쩌라는 말씀.
  “진작 좀 말씀하시지요. 난, 요번에는 그냥 지낼라 혔는디.”
  “그럼 그랴~. 그러라니께.”
  “아구~. 속 터져. 차라리 ‘떡 해라.’하시면 좋지 않어유? 꼭 그렇게 속 보이는 거짓말을 하셔유.”
  안 되겠다. 쌀은 아직 불리지도 않았으니, 방앗간에 가 봐야겠다. ‘일을 만들어요. 일을. 돈이 없지 떡이야 없을라구.’ 엄니는 은근히 날 힘들게 한다며 구시렁구시렁 방앗간으로 뛴다.

  제사를 지내고 식사를 끝낸 시누이들이 일어선다.
  “에미야. 그 떡 한 조박씩 싸고 귤 댓 개씩 넣어라.”
  “엄니요. 떡을 한 조박이나 싸서 뭐한다요. 그냥 큰 고모네 할머니 할아버지나 드시게 몰아 드리자구요.”
  장에서 사오는 음식은 안달이 나기 마련이다.
  “그렇허믄 다른 애들은 줘 볼 게 없잖여~.”
  아하, 음식이 푸짐하지 못해서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시다.
  “추수한 건 아직 방아도 못 쪟는데, 어쪄요.”
  해마다 이맘 때면 가래떡 두어 말을 뽑아 하~ㄴ 자루씩 담아주던 일을 생각하시나 보다.    시누이가 몰랐다는 듯 묻는다.
  “방아 안 찧었어요?”
  “쌀 낼 데가 없어서 아직 안 찧었어요. 팔 데를 해 놓고 방아를 찧어야 할 테인데…….”
  누이들은 그래서 떡을 받아가지 못함을 이제야 알았다는 표정이다.
  “귤이라도 좀 댓 개씩 싸라구~”
  “엄니요. 귤 댓 개를 갖고 가서 어디다 붙여요.”
  “엄마. 우리도 집에 있어요. 걱정 마세요.”
  “느이 것하고 우리 것하고 같은 겨?”
  듣자하니 심사가 뒤틀린다. 하나 같이 부잣집인데 귤을 사 먹지 못할 처지도 아니지 않는가. 엄니는 왜 저리 안달을 부리시누. 우리 막내도 귤이라면 앉은 자리에서 열 개도 부족한데 남겨 두면 어때. 오늘은 일일이 부딪힌다. 곧잘 싸주고 건네주던 버릇이었는데, 오늘은 여~엉 내키지를 않는다.
  “이거나 가져가라.”
  엄니는 둘째 시누이가 사들고 들어온 롤빵을 고집스럽게 셋째 따님의 손에 쥐어주신다.
  “난, 크림 빵 좋아하들 않어.”하신다.
  ‘엄니만 입이유?’소리가 목젖을 열고 튀어 오르는 것을 꿀꺽 참는다.
  ‘지도 크림 빵 좋아혀요.’라고 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다.
  ‘가져가란다고 가져가는 사람이나. 엄니 몫도 안 남기고 딸기를 몽땅 먹어치우는 사람이나. 치아 없는 엄니 뒀다가 한 번 더 드시라고 못하고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다 시피 하다니…….’
  나도 참 못 됐다. 빵 하나에 목숨을 걸 것도 아니고, 귤을 즐겨 먹는 사람도 아니면서, 딸기타령은 또 왜 하누.

  다음 날.
  막내아들이 귤껍질을 수북하게 쌓아놓는다.
  “저거 보셔유. 우리 애들도 저렇게 잘 먹는 걸…….”
  “뭐 들려보낼 게 없응께 그렸제.”
  “못 먹구 사는 사람들이유? 살림이나 어려운 사람들이냐구요.”
  어제 다하지 못한 푸념을 이런 식으로 토하는가 싶기도 하다. 엄니가 듣기 싫으신지 아장아장 걸어서 당신 방으로 향하신다. 곧 돌아 나오시는데, 손에 롤빵이 들려있다.
  “이건 에미 먹어.”
  내가 빵을 먹지 못해서 심통이 났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엄니나 자셔유.”
  “너 먹어.”
  “싫어유.”
  그만 해야겠다. 이제는 내가 일어서야겠다.

  주방으로 들어와 소리 내어 설거지를 한다. 갑자기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생각난다. 엄니도 내가 친정엘 가면 뭐라도 들려 주려고 애를 쓰셨다. 올케는 부잣집에 왜 그런 걸 주느냐고 앙탈을 부렸다. 부자도 아니려니와, 엄니를 생각해서 받아들고 오고 싶었다. 올케는 주고도 욕먹을 일을 사서 한다고 친정어머니를 나무랐다. 올케의 그러는 소리가 싫어서 나도 올케를 따라 어머니를 나무랐다. 물론 주시려던 것을 들고 나오지 못하셨다. 결 사나운 올케는 필경 그것을 빼앗아 버렸을 것이 뻔했다. 어머니는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거실에 앉으신 엄니를 돌아본다. 엄니는 소파에 단정하게 앉아서 내 엉덩이를 쏘아보고 계시는 중이시다. 그 얼굴에 친정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진다. 쯧쯧쯧. 딱하기도 하시지.
  “엄니요. 방아 찧어오면 가래떡 두어 말 뽑아서 고모들이랑 나눠 먹을 테니 걱정 마시요.”
  “이~잉. 그럴 겨? 그라믄 좋~제.”
  금새 엄니의 볼이 볼캉 해 지신다. 나도 참 못 됐다. 진즉에 그리 한 말씀 드렸으면 오죽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