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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들이 속삭이는 고향


BY 다정 2003-09-13

들꽃들이 속삭이는 고향

 

  '고향'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나는 알 수 없는 그리움과 향수에 젖게된다. 문득 창 너머 보이는 초록의 숲이라던가 맑은 하늘의 구름 한 점,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게 되는 날은 기억억의 저편 너머의 동화 같은 시간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봄이면 뻐꾸기 울음소리가 귀에 맴돌고 온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꽃들의 향연은 어지러움으로 다가오는 황홀 그 자체였다. 수수함과 앙징스러움으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던 낯익은 들꽃들의 속삭임은 고향이 아니고는 살려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일 것이다.

  새악시 치마같이 마을을 감싸안은 황룡산은 마을 사람들의 빨래터이자 삶의 휴식처였다. 바위틈을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 내면의 세계로 침잠하게 되고, 양지바른 언덕에 누워 졸음에 취하면 어느새 꽃잎되어 어지럽게 춤을 춘다. 어릿어릿 다가오는 현기증과 함께 귀에 들려오는 고향 아낙들의 빨래 방망이 소리는 물소리, 바람소리, 산새소리와 어울려 멋진 협주곡을 연주해 내곤 하였다. 소품처럼 그려지는 그 풍경 앞에서 단발머리 팔랑거리며 소꿉놀이를 하던 철없는 소녀들의 해맑은 미소가 그립고, 하늘가를 맴돌아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던 웃음소리 역시 그립다. 양지 바른 산등성이 무덤 가엔 할미꽃 한 송이가 슬픈 전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덤 속에 잠들어 계신 보고픈 나의 할머니의 목소리가 되아... 하늘 한번 바라본 후 산 아래 대나무 숲 작은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면 멱 감던 아이들의 경쾌한 함성이 들린다.

  꽃잎되어 흘러갔던 붉은 색 꽃 고무신이 발 동동거리던 안타까움 속에 되살아난다. 생일선물로 받았던 꽃고무신을 밤새 품에 안고 자다 자랑하고 싶어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공부하다가도 신을 내려다보고 다른 아이들이 부러운 듯 바라보지나 않는지 힐끗거리며 마음이 붕붕 떳떤 그날이 선명한 아픔으로 가슴을 저민다.

  신작로를 마다하고 들판을 가로질러 오는 길엔 큰 연못이 있고 초록 빛 들녘을 사이에 두고 도랑물이 흐로고 있었다. 도랑물 여울엔 언제나 하얀 찔레꽃이 향기를 뿜으며 발걸음을 잡아 당기곤 하였다. 향기에 취해 꽃잎을 물위에 날리다보면 허기짐에 여리디 여린 가지순을 따서 입속으로 베어먹곤 하였다. 쌉싸름하고 달콤함으로 혀 끝에 감도는 그 맛은 첫랑에나 비유할까! 향기와 맛에 취하면 곡예하듯 떼지어 움직이는 송사리와 버들치를 잡기 위해 책가방을 풀밭에 집어던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무신을 벗어 물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방과 후치마를 가슴 위까지 잡아당겨 올려 입은 후, 고무신 두짝을 손에 쥐고 물 속에 들어가서 송사리떼를 향해 팔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옆에서 송사리를 잡던 친구의 팔에 부딪혀 그만 고무신 한 짝을 놓쳐버렸다.

  "어머, 난 몰라 내 고무신!"

  그 짧은 순간에 고무신은 저만치 떠내려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이라던가!

  물 속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무신을 잡기 위해 달리다가 넘어지고 만 것이다. 그 순간 나머지 한 짝도 떠내려가고, 내 모습은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가 되고 말았다.

  "집에 가면 혼난다 말이야 어저면 좋아"

  발을 동동 구르며 우는 나를 혼자 남겨두고 친구들은 하나 둘씩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집으로 갔다. 집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결국은 나를 찾아 나선 할머니를 만나 집으로 들어갔다. 야단치지 않고 더 고운 꽃고무신을 사주셨던 할머니의 사랑과 그날의 안타까움은 도랑물과 함께 하얀 찔레꽃 향기로 다가온다.

  연못이 있고 풀밭이 있던 그 길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고무신을 벗어 송사리를 잡다가도 목이 마르면 두 손으로 물을 떠마셨고, 학교 뒷산으로 한바퀴 돌아오다 덤불사이로 산딸기라도 발견하는 날은

  "야! 산딸기다"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가 잽싸게 입에 넣고는 그 새콤달콤함에 취하곤 하였다. 삘기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소풀이라 불리는 풀을 뽑아 자근자근 씹으며 단맛을 느끼곤 하였다. 보이는 것 모두가  먹거리였고 한 폭의 그림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보리밭의 깜부기를 맛있게 먹고 시커멓게 칠해졌던 얼굴은 지금도 미소를 머금게한다. 시냇물을 따라 둑길을 한참 걷다보면

신작로가 나오고 유령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낡은 판자집을 가운데두고 보리가 키만큼이나 자라고 있었다. 황금빛을 띤 보리 사이에 시커먼 깜부기가 군데군데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여기만오면 시냇물에서 송사리 잡을 때처럼  신이나서 보리밭으로 들어간다. 깜부기를 따먹기 위함이다. 여기서도 서로 많이 먹을세라 한바탕 난리가 인다. 보리밭에서 나온 친구들은 온 얼굴에 먹칠한 듯한 모습을 서로 바라보며 깔깔거리거나 배를 움켜지고 웃곤 했던 기억이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가지각색으로 천연분장을 멋지게 했는지  길가던 사람들조차 웃고 지나가곤 하였다. 그러고도 배탈 한 번 난 적이 없었으니 자연이 준 혜택과 풍성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온 산야를 운동장처럼 뛰어 놀고도 모자라 어둠이 깔리도록 행운의 크로버를 찾던 그 때의 낭만을 다시 한 번 찾고 싶다. 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감동에 젖어 넋을 잃고 바라보던 날의 황홀감도 다시 느끼고싶다. 산아래 마을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저녁연기의 따스함은 평온함과 함께... 이렇듯 자연에 파묻혀 지낸 내 어린 시절은 고향이라는 단어와 함께 따뜻함으로 충만해진다.

  여기 저기서 내 손을 잡아끄는 추억 속의 나의 고향은 내 삶의 값진 재산이 아닐 수 없다. 그 고향이 있으므로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삶을 새롭게 사랑할 수도 있고, 때로는 위안을 받늗다. 길가의 풀 한포기, 흐르는 물소리도 예사로 지나침이 없이 속삭임으로 들을 수 있는 감성을 키워준 고향은 내게 있어 영원한 그리움의 연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