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한 마리가 말썽이다. 조금 전에도 눈앞에 어른거리던 것이 잡으려는 순간 사라진다. 투명보자기라도 뒤집어쓴 것 같다. 팔순 어머님의 미간은 찌푸려져 잔주름으로 가득해진다. 파리를 잡으려다 자칫 어머님이 먼저 쓰러지실 판이다.
"제가 잡을게요. 어머님은 그냥 들어가세요."
그러나 어머님은 느려터진 며느리가 영 미덥잖으신 가보다. 어머님 손으로 기어이 파리의 끝장을 보려고 하신다. 사실 내가 파리를 못 잡는 것은 느려서가 아니다. 파리를 잡는다는 것 자체가 징그러워 머뭇거리기 때문이다. 어머님 보시기엔 그런 며느리가 좀 한심하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실 게다.
연세에 비해 집중력이 좋으신 어머님은 파리채를 공중으로 몇 번 날렵하게 휘두르시더니 결국은 승자가 되셨다. 널브러져 죽은 파리의 주검을 의기양양하게 들고 오시더니 알아서 처리하신다. 곁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나는 그조차도 징그럽다며 몇 발짝 물러선다.
드디어 어머님은 한 말씀 하신다.
"장 항아리에 뚜껑 열어놓았는데 파리가 날아다니면 금방 구더기 슨다. 파리는 보이는 대로 바로 잡아야지, 구더기 슬면 어쩌려고."
바로 그것이었다. 어머님이 그토록 파리를 상대로 전쟁 치르듯 하시는 것은 모두 장독 속의 장 때문이다. 합가하며 아파트로 입주하기 전 어머님이 사시던 집 앞마당에는 크고 작은 장독들이 사열하듯 늘어서 있었다. 수십 개는 족히 될듯한 항아리들은 어머님 손때로 오히려 햇살이 퉁기어나갈 듯 반지르르 윤기가 흘렀다.
시부모님뿐만 아니라 시누이 가족까지 함께 살며 열을 훨씬 웃도는 식구들을 건사하시느라 젊은 시절 어머님은 장독들을 채우기에 바쁘셨을 것이다. 그렇게 채워진 장독들은 어머님 마음까지 배부르게 했으리라.
하지만, 아파트로 들어오시면서 장독의 수는 열 개정도로 줄었다. 남은 많은 장독들은 추억과 함께 어머님 가슴에 오도카니 들어와 앉아 있을 것이다.
어머님께 특별히 선택된 장독들은 지금 아파트 베란다에 옹기종기 앉아 있다. 예전의 위엄있던 모습과는 달리 그네들끼리 알콩달콩 정담을 나누며 한가로이 앉아있다.
어머님은 그 중 예닐곱 개정도의 장독에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담가 그나마 제 구실을 하게 하신다.
커다란 장독에 아직 된장이 그득한데도 어머님은 봄이 오기 전, 좋은 콩으로 만들어진 메주를 구하느라 마음이 바빠진다. 이곳저곳 전화를 넣어 새사람 들이듯 메주를 물색하신다. 그렇게 해서 간택된 메주는 안방 한쪽 구석을 떡 하니 자리 잡는다. 그 녀석이 내뿜는 고약한 뜬 내에도 불구하고 메주를 보는 어머님 눈길은 더없이 부드럽고 넉넉해 보인다. 어떤 비결로 까다로운 어머님 맘을 사로잡았는지 넌지시 물어보고 싶다.
물론 그 매력은 바로 장맛에 있다. 어머님은 장맛을 미리부터 믿고 계신다. 어머님은 좋은 재료 때문에 마음 놓으시지만 나는 사실 어머님 정성 때문에 마음을 놓는다.
어머님은 음력 정월이나 이월이면 시골에 계신 이모님께 전화해서 장 담그는 날을 따로 받아두신다. 말 날(오일)을 택해 담그면 장맛이 좋고, 그 맛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된장을 담게 되면 덤으로 얻는 장이 있는데 바로 간장이다. 간장 달이는 날은 아파트에 그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어머님 장 달이는 냄새를 맡으시더니 그 집 된장 정말 달겠구나, 칭찬하신다. 그 말씀에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러나 나는 아직 어머님으로부터 맛있는 장 담그는 법을 전수받지 않았다.
사실 그런 일은 엄두도 안나고 겁이 나서 미리 도망갈 궁리를 하게 된다. 어머님도 그것을 아시지만 그냥 눈 감아주신다. 그저 철없는 며느리 둔 죄겠거니 그렇게만 생각하시는 듯하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장 담그는 법을 배우고 싶다. 한해 한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초조해지기도 한다. 아직은 건강하신 편이지만 연세 드신 노인 분은 사실 하루 앞을 모른다고 언제까지 맛있는 장을 마음 놓고 먹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 때문일까, 나는 장에 관한 인심은 그리 후한 편이 못된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놀러 와서 시금치 된장국을 먹더니 부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로 된장 맛이 너무 좋다고 했다. 된장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고 말았다. 장에 관해서는 내 마음대로 해선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또 인심을 후하게 내기에는 장이 정말 너무 귀하고 소중했다.
어머님께 그런 말씀을 드렸더니 은근히 좋아하신다. 장을 귀히 여길 줄 아는 며느리가 조금은 예쁘셨던 게다.
하지만, 어머님은 장 인심이 후하다. 자손이나 가까운 친척이 오면 커다란 병에 꾹꾹 눌러 가득 담아주신다. 그래서 항상 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장독 그득하게 장을 담으시는 것이다.
베란다로 나가서 된장, 고추장, 간장을 담아 오실 때 어머님은 행복하신 모습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럴 때마다 내 눈치를 보신다는 것이다.
"에미야, 누구는 진즉부터 장이 떨어졌는데도 말도 못하고 조금씩 사서 먹는다더라. 한번 가져가기도 힘들고 해서 이번에 좀 많이 담았다."
나는 그냥 웃는다. 어머님이 식구들끼리 이렇게 나눠 먹고 싶은 맘에 늘 장독들을 안고 사시는데 내가 그것을 싫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왕 나눠주실 거면 넉넉하게 나눠주시는 것이 내 맘도 편하다.
언제부턴가 어머님도 장을 떠내실 때마다 한 말씀을 하신다.
"내가 없으면 누가 이렇게 집에서 장을 담가 먹겠니, 그래서 항상 장 담글 때마다 맘에 걸린다."
어머님이 어디 출타라도 해서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실 때 내가 제일 신경 쓰는 것이 바로 장독대이다. 어머님의 손길이 하루도 닿지 않은 날이 없으니 언제나 장독은 빛이 난다. 며칠 집을 비우신 사이에 빛을 잃은 장독을 보신다면 믿고 맡긴 자식 구박이라도 한 듯 내게 서운해 하실 것이다. 때문에 행주로 장독을 하나하나 정성껏 닦는다. 햇살이 베란다 창문을 뚫고 장독으로 비처럼 쏟아져 들어간다. 어머님 정성도 함께 쏟아져 들어간다. 아파트 장맛은 맛이 없다는데 어머님 장맛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비법을 외면한다. 앞으로도 한참 동안은 외면하고 싶다. 십 년 정도 더 세월이 흘러 내가 오십 대 아줌마가 되면 그때나 슬슬 메주 고르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울까 싶다. 소망하면 그 정도의 시간은 허락되리라.
오늘도 뚝배기에 매운 고추를 넣은 된장찌개를 끓인다. 두부 송송 썰어놓고 뽀글뽀글 끓는 된장에 밥 비벼먹으면 그야말로 밥 한 공기가 뚝딱 이다.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하나이다.
왱하고 파리 소리가 들린다. 나는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안방으로 향한다.
"어머님, 파리가 나타났어요." 그러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다. 어머님께 파리채를 드린다. 그것을 받아들고 어머님은 못난 며느리를 힐끗 보신다. 그리고 불편하신 몸을 일으켜 다시 파리와의 일전을 치르기 위해 나오신다. 역시 승리는 어머님의 것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분께는 끝까지 지켜내야 할 사랑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