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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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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 2005-03-22

며칠 전 좋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귀는 두 개요, 입은 한 개라...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하라는 뜻이라는데 그 동안 단순한 소리, 그 이상의 깊은 울림으로 내 귀를 젖게 했던 말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좋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좋은 말을 새겨들을 혜안이 없었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둔한 제 귀를 밝혀 준 말이 있었답니다.
<말이 가슴 속에 있을 때는 내가 말을 지배하지만, 말을 밖으로 내뱉는 그 순간부터는 말이 나를 지배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늘 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마음 속에 쌓여 있던 말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 교류할 때, 우선은 말이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말을 많이 한다는 것, 그 자체를 나쁘다 할 수는 절대 없지요.
다만 어떤 말을 하느냐 그것은 좀 생각해볼 만한 일인 듯 합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나 가만히 있는 것을 참 어색해 합니다.
때로는 음악이 흐르고 향긋한 차 한잔을 앞에 두고 그냥 그 자리, 그 시간을 즐기는 것도 참 좋긴 하지만 대체로 침묵이 오래 흐르는 것을 안절부절해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어색한 분위기일 때, 누군가가 그 침묵을 깨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은연 중 그 사람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끔 그런 사람이 없고 침묵이 오래 간다 싶어지면 제가 그 역할을 할 때가 있습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데도 그냥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내뱉게 됩니다.
그렇게 화제가 떠 오르면 다시 시간은 흐릅니다.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그런데 그렇게 말을 많이 했다고 생각되는 날은 하루가 속상해집니다.
생각 없이 내 뱉은 말에는 다시 주워 담고 싶은 내용들도 참 많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해지곤 하는데...
그것도 결국은 내가 내뱉은 말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겠지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제가 비교적 금기시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절대로 뒤에서 남의 흉을 보지 말자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의 흉을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웬만한 일은 흉으로 생각지 말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남을 볼 때 되도록 예쁜 부분만 보자. 그리고 남에 대해 이야기 하려거든 좋은 것만 이야기 하자.

아마 여학교 때 남의 흉을 봤다가 크게 마음 다친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말을 하고 나서 가장 후회되는 말들 중 하나가 바로 남의 흉을 보는 말이라 느꼈습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조심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일종의 자기 방어이겠지요. 욕도 안 하고 욕도 안 먹고...
그렇게 하면 참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그것 만이 능사는 아니더라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남에 대한 미움을 이야기 할 때는 나를 믿고 또 나름대로 자신의 억울함과 속상함을 토로하는 것일 텐데 그럴 때도 선한 양 같은 얼굴을 하고 앉아서 나는 별 상관 없다는 투로 원론적인 이야기만 한다면 얼마나 서운할까요?

실제로 그런 일을 종종 겪었습니다. 너무 몸을 사리는 제가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전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든지, 욕을 먹었다든지 그렇지 않고서 쉽게 남의 험담에 선뜻 수긍하기가 쉽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절 더 가깝게 여기고 저에게 속내를 내 비추고 마음을 교류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제 모습은 결코 달가운 것이 아니었을 거예요.

굳이 남에 대해 좋지 못한 말을 한 것이 아니더라도 전 사실 제가 꺼낸 말들을 주워 담지 못해 허겁지겁 할 때가 비일비재합니다.
저도 모르게 제 자랑을 했다든지, 아니면 똑 같은 말을 지겹도록 반복했다든지, 또는 저 스스로 비굴해지는 말을 했다고 느껴질 때라든지,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 중에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고 생각되든지 등등등...
그럴 때는 제가 저 자신을 벅벅 긁습니다. 그러니 좋은 사람과 통하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남의 험담이 나올라치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뺄 수 밖에요. 아니면 제가 너무 괴로운 데요.

그러다보니 좋지 않은 점도 많답니다.
어느 선 이상으로는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주고 받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그저 적당히 친하고 적당히 좋아하고... 싸움도 없고 대신 뜨거운 의리도 없고 밍숭맹숭...

그래서 가끔 외롭기도 합니다.
어제도 한 엄마와 그런 일로 한 시간 이상을 통화했지요.
통화가 끝나고 난 뒤, 전 마음이 영 개운칠 않았습니다.
속상해서 제게 전화했던 엄마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응대했던 것 같아서요.
입장을 바꿔 제가 그 엄마라면 참 허탈하고 속상할 것 같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무슨 말을 했나, 하며 내가 뱉은 말이 짜증나서 괴로울 것 같습니다.
그 엄마가 좀 찜찜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을 때, 전 왜 다시 전화를 해서 함께 흉보고 속상한 마음을 후련하게 해 주고 싶어졌을까요?
그러나 결국은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꼭 그만큼의 여전한 거리를 확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엄마에게 참 미안합니다.
사실 전 그 엄마 편인데...

그런데도 제가 다칠까봐 몸 사리고 맘 사려서 평화로우면 그 뿐인건지...
그러다보니 늘 주고 받는 대화는 거기서 거기...
사람을 만나도 여전히 헛헛하고 울적하고...

원래는 좀 더 뜨거운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 매력 없고 재미 없는. 그냥 나쁘지 않은 사람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말로나 글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