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자살은
아마도 자살은
별게 더 있을까라는
체념의 질문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내 손으로 날 마감시킨다는 것은
매우 극단적이고 거친 행위지만
그 행위를 가져오는 것은
어찌보면 매우 단순해 보인다
바로 삶에 속았다는 것이다
보통 다가올 것은
지나간 것 보다 더 화창해야 할 것이다
빗길을 걷고 있는 자에게, 다음에도
우산을 걷어낼 수 없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축축한 발걸음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
한 줄기 빛을 보기 위해 걷는 자는
지금의 습함이 두려운 게 아니라
숱하게 견뎌내도
찾아오지 않을 화려한 날에 무너지는 것이다
희망으로 얼마나 속이고 있는가
화려한 날은 언제 오는가
이제 손에 잡 힐만 한가
비라도 그칠 것 같은가
밋밋한 날이라도 오겠는가
누가 날 속여왔는가
너인가
아니면
나인가
*시집[일기를 넘지 못하고] <시 쓰는 사람 단> 2013년 tstore, 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