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연인
김수인
이제는 단지 추억이 되겠지.
에스프레소 커피 향을 타고 오르는 첫 만남의 설렘부터
노을을 벗 삼아 함께 거닐던 해변의 시간과
차 안에서 울리는 오래된 팝송에 귀 기울이던 시간과
텅 빈 객석에 나란히 앉아 스크린 속 여주인공에게 느끼던 연민의 시간도
자신의 각자 갈 길이 결정된 지금 단지 추억이 되겠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의미가 없지도, 나쁜 추억도 아니지만
이제는 다시 재생할 수 없음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결국 슬프게 돌아서는 운명에 절망도 하지만
이별은 사람을 성숙케 한다는 격언에 의지하며
애써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며
보다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으리라 서로에게 기대하면서
이렇게 시간을 고이 묻어 둬야 하겠지.
언젠가 빛바랜 사진첩을 들척이게 되면
당신의 앳된 얼굴이 다시 가슴에 들어오며
평생의 반려자가 되지 못한 슬픔을 아로새긴 채
힘없이 돌아섰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슬픈 연인이 담긴 사진첩을 덮게 되겠지.
- 시집 \"붉은 노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