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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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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루지


BY 전유경 2012-07-17

 

뾰루지

 

 

 

 

 

가령 그대가 뾰루지였다고

 

그냥 단지 뾰루지였을 뿐이라고 쳐도

 

어쨌거나

 

작은 꽃망울 하나를 밀어 올리는 것도

 

봄이 오기 전부터 부지런히 물밑작업을 해야 하듯

 

그대와 나 또한

 

뾰루지가 앙증맞게 솟아오르기 전부터

 

보이지않는 그 뭔가를 서로 주고받지 않았겠나

 

그러니 그대, 내가 살을 뚫고 나오는 근질거림을

 

참지 못해 긁어버렸다고 원망하진 않겠지

 

몽우리만 만들어놓고 피지 못하는 것을 꽃이라 할 수 있나

 

발갗게 제 맘껏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제 시절 가면 허방으로 떨어지는 게 꽃이지

 

그대 곪을 대로 곪아

 

눈물 같은 진물까지 철철 흘렸으니

 

제대로 피었다 진 거 아닌가

 

아주 잠깐 살다 가는 꽃들도

 

나뭇가지 가지마다 저 살다온 자리는 있지

 

눈물 다 마른 자리에 꽃송이 떨어진 것처럼

 

보일 듯 말 듯 그대 있다 간 표시도 해두었으니

 

어찌 아름다웠다 말하지 못하겠나

 

 

 

 

-- 전유경 시집 <꽃잎처럼 흩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