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있지
주머니 속에 구겨진 지폐 몇 장 꺼내
주름진 채로 좁은 창구 속에 밀어 넣으면
벌써 친근한 손 때 묻은 네모나한 종이 한 장 나오지
그 종이엔 나의 행선지 적혀있어
보고 또 보며
내가 옮겨질 곳을 한 손에 꼬옥 쥐게 되지
플랫폼엔 나와 비슷한 영혼들이
제 각기 편한 자세로 서성이다
초라한 삼등열차 진동이 전해오면
엷은 미소 짓곤 하지
그 진동은 그들에게나 나에게나
그대로의 쉼터이기에
그곳에 한 발 내려놓으면
소소한 망각 기대하고
그곳에 또 한 발 내려놓으면
갑작스레 찾아 올 인연 기대하며
그곳에 나를 내려놓고
창문을 조금 열어 놓으면
잡고 싶던 것들도
매캐한 연기와 함께 사라져가지
빛바랜 의자에 기대면
누군가 남기고간 얼룩덜룩한 사연에
익숙해 질 수 있고
내가 만들었던 슬픈 흔적에 대해서도
익숙해 질 수 있고
그렇게
그렇게
모처럼
아무 두려움 없이
가고 또
가고 있지
-감상평-
경춘선이 사라졌더라구요. 대신 그곳에 전철이 생겼는데, 왜 그리 예전에 느끼던 맛이 나지 않던지...
편리해지고 깨끗해졌는데, 추억과 그리움은 없었습니다. 대학시절이 까막득하게 느껴지네요..
경춘선타고 엠티가던 그 때가 다시 그리워집니다.
그 추억 떠올리면서 이 시를 읽으면 살짝 기분좋아지면서도 아련한 느낌이 납니다.
아주 잠시 나마 이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그렇게 그렇게 모처럼 아무 두려움 없이 가고 또 가고 싶습니다>
-출처-
제목: 일기/ 시인: 시 쓰는 사람 단 / 출판사: 티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