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세번 째인가 두번 째인가 큰 기차역에서
구걸하는 한 거지를 만났다
주말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뭇잎이
늦가을 찬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건널목에서
푸른신호등만 쳐다보는 어떤 행인에게
때에 쩔은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쓰윽 디민다
너도 나도 슬슬 눈치보며 뒤로 빼고 저리가고
결국 나에게까지 그 바구니가 왔다
속으로는 돈이 없는데 이 거지는 나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한 번 씨익 웃었다
거지가 어떻게 저렇게 수수하게 웃을까 이런 호기심도 잠시
문득 자판기 커피향기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주보니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를 쪽진 칠순이 다 된 할머니였다
땅속깊이 묻혀 발굴된 백제의 깨진 기와에 새겨진 그 미소랑
많이 닮았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듯이 할머니 거지의 파란
소쿠리에 하나씩 하나씩 넣었다
또 웃으셨다 나도 마주보고 한 번 씨익 웃었다
거지의 웃는 눈동자가 우리 집 지붕 위 밤 하늘에 뜬 먼 별빛처럼 깊었다
거지도 직업이다 건널목이 직장이고 거리에서 산다
이제부터 이렇게 박박 우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