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구덩이가 있는 줄 짐작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 마음을 놓은 적이 없었다.
떨어지며 뒹군 경험 다분하기에 형태만 봐도
구덩이의 깊이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빠질 때의 느낌, 아픔을 얕잡아 본 적 없었다.
하지만...
통증으로 죽을 듯 죽지 않음을 알고 시간이 약이라며
견뎌낼 수 있을 자신감을 얻었다고 믿었다.
치기...였다.
늘 내 앞에 반전이 뱀처럼 똬리 틀며 도사리고 있었다.
나를 믿었고 발등을 찍은 것도 역시 나...
매번 같은 구덩이에 빠져 死者를 맞을 것 같은 두려움 떼 묻은
통증에 너부러지고 마는 나를 대할 때마다 더한 갈등과 혼란
속에 빠지고 만다.
싫다.
나를 이리 만드는 세상이,
그리고 뭣보다 내가...싫다.
초근목피를 씹어 먹을지언정 구차하지는 않으리,
비굴하지는 않으리,
배타적이진 않으리...
그 의욕으로 넘치던 맹세들은 엇다버리고 초라한 채로
늘어나는 것은 편견과 아집, 불신과 의혹뿐.
나의 그 삶조차도 반전이었다.
식스펜스의 마지막 부분처럼.
브르스윌리스의 눈 속에 녹아있던 공포와 허무, 믿을 수 없다는
마음이 때때로 내게도 묻어난다.
반전...
희망을 버려?
반전...
흉측한 애벌레가 화려한 날개옷을 입은 나비의 성체가 된 것처럼
내게도 그런 일 생길 날이 올까?
인생의 앞길엔 암초가 도사려 가던 길에 난관에 부딪힌다고...?
그렇지만 포기보단 지혜롭게 대처하라고...?
이론상 좋은 말이다.
하지만 구덩이에 수시로 빠져보시길, 그 말이 그리 쉽게 나오나.
나만 이러고 사는 것이 아닌 줄 안다.
나를 봐달라고, 알아달라고, 이해해달라고
주구장창 떠들고 있는 나를 오히려 팔짱 끼고 이죽거리며
바라보는 이가 있을 수도...
지금 이 짓이 내 얼굴에 침 뱉기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것도 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