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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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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BY 박경란 2005-05-10

제가 어렸을적 우리 아버진 너무 엄하셔서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 본적이 없습니다. 사소한 잘못이라도 꼭 아버진 메를 드셨으니까요 그런 아버지가 저한테 갑자기 잘해주시면 방에 들어 가서 혼자 울먹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살 한살 나이가 들어서 제가 중학생이 됐을때 왜 아버지께서 그렇게 엄하셨는지 알게됐습니다. 저희 아버진 어렸을때 부모님을 잃으셨습니다. 본인이 뜻하지 않게 억울하게 전쟁으로 인해서 전쟁 고아가 돼셨죠 형제 분들은 있었지만 그때 아버지 나인 겨우 5살 이었답니다.큰 누나가 키우셨지만 큰 누나마저 돌아가시고 친형 집에서 어린나이에 머슴 처럼 일만하시고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형수한테마저 구박 받으면서 생활 하셨답니다 밥을 먹다 보면은 위엔 분명 따듯한 흰쌀 밥인데 밥을 뜨다 보면 보리 밥에 그리고 또 한번 뜨다보면 몇일 지난 찬밥 그렇게 해서 늘 드셨다고 합니다. 일명 3층 밥 아버진 그렇게 형 집에서 지내 시다가 청년때 월남에 지원함 부자가 된다는 소문의 말을 믿으시고 월남전에 참가를 하셨답니다 아버지 몸을 보면 총알이 지나간 자국이랑 그이후로 없어지지 않는 피부병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런게 있습니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다해 월남전 까지 참전하시고  형집에 오셨는데 형이 돈 있는 것을 알고 그돈을 조카들 학비에 보태달라며 빌려가셨답니다 근데 말로만 준다고 해놓고 몇년전에 아버지 이름앞으로 재산도 않 남기시고 그만 돌아 가셨습니다 저희 아버진 정이 많으 신 분입니다. 어른들께서도 저희 아버진 법없이도 사실 분이라고 말씀하실 정도 입니다. 제가 때묻지 않게 순순한것도 그런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저번달에 저희 아버지 환갑 잔치를 하셨는데 그때  그렇게 엄하셨던 아버지가 왜그리 안타까워 보이던지 죄송해서 아버지 께 신랑이랑 절을 하고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이날이때껏 그렇게 힘들게 사시느라 우리 다섯 공주 학교 보내고 시집 보내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그 무거운 짐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고생하신 아버지께 효도 제대로 해드린적 없는데 어느세 나이가드셨는지 죄송스럽기만합니다.  이세상에서 가장 훌륭하신 우리 아버지 입니다. 아버지 환갑 잔치  끝날 무렵 저희 아버지가 갑자기 우셔서 저희 가족들은 기념 찰영 내내 눈물 바다가 됐습니다

한번도 아버지를 꼬옥 안아드린적 없었지만 그날  아버지를안고 아버지 품이 따뜻 하고 넓다는 것을 27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