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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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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가슴을 짓누울수록


BY 이 청리 2003-07-09





벼줄기 끝에 매달려 있는

저 애벌레 뒤에

꼭 끌어 안고 있는 날개 달린

잠자리 하나

내 눈길이 가 머무는 순간

다른 종과의 짝짓기!

화들짝

남모를 수상적한 생각을

논두렁에 차마 내려 놓지 못하고

한참 동안을 머뭇거려야 했네

봐서는 안되는 것을

훔쳐 보고 난 이 무안감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네

어디에 숨고 싶어지는

이 떨리는 가슴을 짓누울수록

더 쿵당거리고

서둘러 논두렁 길을 걸어나와

큰 농로 길로 들어서는데

거기

잠자리 한 마리가

날개를 파드럭거리며

비상의 몸짓을 하고 있었네

내가 그만 못볼 것을 보고들켜버린

수상적한 생각의 껍질을

두 쪽으로 쪼개어

우주의 신비 하나를

또르르 던져주고 있었네

다른 종과 짝직기가 아닌

벼줄기 끝에 매달려 있는

저 애벌레의 등가죽을 칼로 오려낸 듯

선명한 자국을 남기고

그 아픔으로 날아오르려는

저 경이로움에

내 발걸음이 멈춰서고

허물만 남은 그 애벌레는

벼줄기를 어찌나 꼭 붙들고 있는지

파란 힘줄이 솟아오르듯 해

내 눈에 눈물 고이게 했네

잠자리는

자신의 분신었던 저 애벌레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벼줄기를 꼭 끌어 안고 있는

저 애벌레의 지고 지순한

이별의 그 껍질까지

너무 눈이 부셔

나는 그만 큰 절을 올리고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