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거라! 풀들아! 나무들아!
제주! 너의 품 속에 안겨
내 시름을 놓아버렸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세파들의 질긴 인연도
제주! 너는 다 풀어
내 등을 다독거렸다
풀들아!
나무들아 ! 잘 있거라
내 속에 갈망들아 !
잘 있거라
여기 이 곳에 두고 간다
먼 훗날 돌아와 만나면
저 한라산만큼
너의 품 속처럼 의연하겠지
서귀포 흰 파도야
잘 있거라
너의 품 속에 안겨
세상을 아우르는 마음을 품었나니
모든 것이
꼬이고 뒤틀리고
앞이 보이지 않아도
여기와 다 보였다
올 때는 빈 몸으로 왔지만
돌아갈 때
빈 마음에
흰 파도를 가득 담고 간다
사기꾼의 얼굴은
세상을 속이고도
능청스러움으로
세상을 손안에 쥐고
흔드나니
이 또한 기묘케한 힘이나니
우리 같은 우매한 자!
당한 것이 복 받는 일 아닌가
제주여! 너는
귀향의 이름으로 닳아지는
너의 심장을
보여주는구나
지친 자!
외로운 자!
그 영혼의 슬픔을
먹고 마시는
제주여!
나도 너처럼
이 슬픔을 먹고 마시며
마침내
살아서 펄펄 뛰는 피가 되는 것을 보았다
아!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막다른 골목길에 내몰려
누구 하나 힘이 되어주지 한 곳에서
제주 !
너는 나를 불러 참 벗이 되어 주었다
아웃사이더의 생 !
이 한세상 태어나
그늘에서 그늘로 살아온 생 !
내 양심까지 팔게 하는
사기꾼은
부처보다 더 인자하게
다가왔다
그 얼굴 뒤에
숨겨진 갈구리
내 생의 살점을 갈기 갈기 찍어 발겨
먹으려다
목에 걸려
헉헉거리면서
끝까지 우겨대는
저 꼴을 보아라
제주여!
바다 속 깊은 곳에 자라고 있는
그 전복 속에 진주를 어떻게
키우는가를 보여주었다
태풍을 만나면서
그 전복들의
길고 긴 기다림들 속에서
진주가 커지고
태풍이 올라오는 것을
세상은 싫어하지만
제주 바다 너는
거대한 태풍을 맞아드린다
세상의 뿌리가 뽑아
마침내
그 뒤에 하늘이 있는 것을
전하는 제주여!
그 사기꾼의 생김새는 볼짝시면
대도 조세형의 닮은 꼴이요
웃는 꼴은 너무 느물거워
속에 든 똥물이 넘어 올 지경이요
그의 걸음 걸이는 오도방정을 또는 꼴이요
그의 가늘게 뜬 뱀눈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혐오감을 불러 일으킬 상이요
그의 거동은 흉물스러운
무리잡배들의 닮은그대로요
그의 어투는 늘어터진
충청말에다
구렁이 담을 넘다가
전라도 군산 말로 변색하면서
위장전술 재주꾼이라
여자보면
껄떡대는 그 꼴라니는 천박하기 이룰데가 없는 자!
남을 속이는 천부적인
사귀꾼의 피를 이어받고 태어나
그를 만난 자
사기 당하지 없는 자 없었다고 하니
비워 둘 수 없었던
시간들이여
그대가 바람으로 불어 나를 흔들어
나는 흰파도이니
흔들어다오
나는 더 아름다워지리니
기쁨으로 맞이 하리
한세상의 고난도
물거품인것을 알겠더라
지나간 세월의 잔상이
먹구름만이 아니더라
이제 깨달음의 돛폭 하나를
폈으니
무슨 근심 있겠는가
사는 일이
피를 말리는
뜻대로 되지 않음이
세상의 이치 이니
이것을 알기까지
마흔해를 넘겼으니
희망이란 것이
참 마음이더라
다 걸러지고 씻겨지는
이 마지막 자리에 남아 있는
이 희망이
참 마음이더라는 것을 알겠더라
잘 있거라
풀들아
나무들아
먼 바다 바람을
가장 먼저 맞으며
이 땅의 처음의 소리를 간직하고 있는
제주야!
외로움이 소금으로 빛나던
제주야!
역사의 사직의 수난을
온몸으로 겪으며
땅 속 깊은 곳으로
흘러 보내 다시 쓴
한라의 역사여
너는 이땅의 발이었다
수난의 발!
이제는 너는
이 고난의 그 발을 딛고
세계를 향해 내딛고 있다
귀향의 슬픈 역사를
가슴에 두면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영원한 시간의 거처였다
비와 바람의 시련이
다 녹아
아름다운 거울이 돤
제주도야!
너의 품 속에 안기면
이 세상의 때가
다 빠져 나가고
다시 희망의 마음을 품을 수 있나니
너는
우리들의 쉼터다
사시 사철 꽃을 피워
우리의 눈물을 열매로 매달아 놓았다
너가 있어
우리는 쉼의 이 정점에서
더 큰 것을 바라 본다
태고의 신비를
손끝으로 전해주는
우리들의 친구다
이제 난 돌아 갈 시간이 왔다
한라산이
물굽에 잠기고
내 기억의 거울을 닦아
너를 추억케 하는
시간은 앞으로 더 길어질지니
너를 떠올리면
이제 너가 먼 곳에 있지 않고
내 피속에 흐르고 있다
고단했던 내 영혼을 열어
저 파도 속에 집을 짓게 했던 제주야
나도 그 아름다운 집 한 칸을 지었다
지친이에게 값없이 줄
그 집 한 칸을 지었다
내가 살아 온 시간은
역경의 연속이었고
단 한번도 웃어 볼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고
여기까지 와 내려 놓고 간다
이 다음에 지는 짐은 가벼우리
아무리 짓눌려도 기쁨이리
한번쯤 부려 볼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이었으니
내 기억의 어둠을 몰아내고
여명의 빛을 열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랴
준비도 없이
사람은 떠나게 마련이다
이것이 사람의 일이니
앞으로 다가 올 일을
또 다 알 수 없는 것
나 이곳에 온몸 바쳐 살지 못한 것도
시인한다
나를 찾기까지 침묵의 시간도 길었다
이 곳에 와 아하!하면서
내 속에 있는 나를 본다
여기 내가 후회하고 있는
참된 나를 본다
사람은 예고도 없이 떠나는 것
그러기에 이렇게 가슴 저미고
그리움이 가슴에
빗물처럼 타고 내리는 것
눈물의 시간
눈물의 젊은 날
어이 다 말로 다 하랴
혼자서 상처 입은 짐승처럼 삼키며 사는 것
제주여!
너의 품에 안겨
남국의 정취에 젖어
세상도 물위로 흘러보내는 것을 보았다
세상은 물 위에 뜨지 않는 바위인줄 알았는데
배처럼 띄어 움직일 수 있다니
이 또한 한 시공을 넘는 일 아닌가
일찍 도를 닦지 않았지만
사는 것이 도를 닦는 것
마음이 비좁아
사는 것이 비좁았다
제주야
너의 품속의 바다는 넓어
내 마음을 넓혀
나를 띄었다
너무나 작은 나
나뭇잎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으니
참으로 산다는 것이 번민의
급물살인 것을
이 급물살에 내 젊음을 다 보었으니
다 보냄이 나를 찾는 것이었구나
나와 만났던 사람들
귤 농사를 지으며
깊은 병에 들고
먼 곳에 와
이곳에 터를 잡고
생존하기까지의
긴 몸부림이여
산다는 것이 눈물겨움이 아니냐
모두가 정다운 사람들
어느 사이 정이 들어
헤어짐의 가슴이 저려온다
모든 것이 이처럼
뜨거움으로 이어진 사람이기에
어디에서도
정다운 사람들을 그리워 하는 것
떠남이 길이 된다
우리 생은
예정도 없이 어디론가
떠남의 연속이었으니
살아 있음의 행복을 맛을 본다
제주여!
너의 품에 다시 돌아와 서는 날은
이제 어느 날일까
가는 길마다 녹색의 빛깔을 두르고
트임의 길을 보여주던 너는
이제 내 안에
그 트임의 길 한자락을 깔아 준다
어디에 올라서도 한라산이 보이고
바다가 발아래 굽어 볼 수 있는 곳
감귤의 노란빛들
그 속으로 손 내밀면
시간의 약속을 만지는 듯 했다
한 겨울 흰눈 속에서
투명한 빛을 발했던 감귤의
선연한 저 빛깔들
계절 속에 계절이 겹쳐서
계절이 오는
제주!
너는 시간의 매듭을 푸는 손이다
지난 날은 수난의 발이었지만
이제는 미래의 시간을 꺼내어
만인에게 건너주는 손인
제주아 !
풀들아 !
나무들아!
잘 있거라
내 속에서 오랜 숙적처럼 살아 온
공포와 같은 갈망아
잘 있거라
이 제주의 흰파도와 짝하고 있거라
지금 마지막 같은 심정
다시 시작은 또 이어지리라
나를 묶은 밧줄들
다 두고 간다
이제는 저 배들을 묶는 밧줄이 되리라
바람은 바다를 가로 지르며
포효하는 소리도
내 귀에는 음악이었으니
아득한 날
이곳에 뼈를 묻고 살아 온 사람들
신의 분노로 여기며 허리를 굽히는
그 눈물어림!
집은 땅과 맞닿아
낮아짐의 시간 속으로 들어서
하늘의 온전한 뜻을 향하고
살아온 사람들
이제는 전 세계사람들의 심장이 되어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이곳에 온 이들이
쉼을 얻어 가고 오고 있으니
잊혀지지 않는 곳
더 큰 세계는 어디인가
마음 속에 있었고
이 마음을 닫고 있었니
어디에 큰 세계가 있었을까
제 자리를 잡지 못할 때
약해보이는 보이는 것
흔들어 흡수하려고 하는 것
비굴!
없음은 비굴의 극치
이것을 깨달으면 슬퍼진다
제주 바다는
모든 것을 풀어서
태풍 속에 놓아두라고 한다
태풍은 파도 아래 두어
처음으로 돌려 놓기 때문이다
아파하지 마라
사는 것은
어자피 아픔으로 통하는 것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면
모든 것이 꼬이기 마련
언제나 힘의 독립체로 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내부의 힘을 기르는 것
아름다움이여
어깨를 걸고 걷자
풀들아! 나무들아!
잘 있거라
모든 것은 흘러가고
변해가는 것
탓하지 마라
모든 것은 만나게 되는 것
이 만남이 행복이 되어야 하기에
아파하는 것이다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떠남이 현실인 것
이것이 인생
원망도 불평도
바다에 두고 간다
살다 보면 그 자리에 서게 마련
제주여!
왜 시간이 화살인 것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