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효순이 미선이는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의 딸입니다.
아니 벌써 이렇게 일년이 되었군요 .
그때를 생각하면서
다음 책에서 퍼왔습니다.
여러분 읽어 보십시오.
제목 평화의 촛불
부모와 자식이 맺어진
그 인연의 끈은
하늘도 끊지 않는다는데
그 여름 날
도로변에서 전부를 끊어 놓고
그냥 덮어두고 살라고 한다
부처가 되어 살라는 걸까
예수가 되어 살라는 걸까
미선이 효순이
엄마 아빠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 일뿐
핏줄에 한없이 이끌리는
이 땅의
어미 아비의 뜨거운 마음을 품고
온 힘을 다해 사는
그런 순박한 꿈들을
이 촛불에 담는 것도
미국인들의 눈에는
큰 죄가 되는 걸까
그들도
아들 딸들을 낳고 살 텐데
핏줄에 한없이 이끌리는
어미 아비의 뜨거운 마음은
우리와 똑같을 텐데
그들은
예수의 큰 마음을 품어
아무렇지 않는 일로
접어 두고 사는 걸까
아니면
이 땅을 지켜주려고 왔다는
그 수고로움의 대가쯤으로
받아 들이는 걸까
그 어떤 나라의 문화라도
사람의 생명보다
더 앞서지 않을 텐데
사람의 핏줄보다
더 뜨겁지 않을 텐데
미국의 문화는 앞서나 보다
6
이 겨울 어디에도
꽃 한송이 피어 있지 않는데
꽃 향기가 풍겨오는 것은
거기 작은 고사리 손 안이네
이 향기에
젖어 드는 사람들마다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네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포르투갈과
결전을 하루 앞 둔 날
안전환!
황선홍!
박지성!
희망의 실핏줄이
다 붉어지게 외쳐 부르는
우리들의 풀빛 목소리 속에
은종이로 구겨졌던
미선이
효선이
다시 펼 수 없는
그 은종이 위로 지나가는
바퀴 자국이 선명히 찍혔네
작은 고사리 손은
다 구겨진 은종이를
소리없이 펴고 있네
구겨지기 전에
눈부시던 미선이 효선이
그 초롱한 눈빛
가슴으로 그리던
수채화 보다 더 아름다웠던
그 꿈들
하늘의 별이라도 다 따 올 것 같은
그 설레임의 날들
푸른 파도를 너머에 있는
그 초록의 세상을
다 옮겨 왔던 눈부심들을
다 펼쳐 보여주네
바라보면 어느 사이
우리는 은종이로 구겨지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던
미선이 효순이 몸으로 남아
거기 파르르 떨고 있네
차마 아프다는 말 대신
이 촛불로
부끄러운 우리들의
얼굴을 가리우네
7
여기서 경기도 양주땅은
얼마나 먼 곳일까
56번 파란 이정표 딱지가
우두커니 서 있는
실날 같이 긴 그 외진 산길
이른 새벽 실안개가
빗질을 하고 갔으리라
멧새들이 종종 걸음치며
부리로 빗질 하고 갔으리라
나뭇잎들도
제 몸의 푸르름으로
더 말끔하게 빗질 하고 갔으리라
누군가의 생일날 아침은
하늘도 선물을 준비하느라고
부산하다고 말했던가
미선이 효순이도
그 전날밤
뜬 눈으로 밤을 새웠으리라
친구의 생일의 선물에
마음을 담고
온 정성을 담느라
잠을 설쳤을지도 모르리라
그 눈부신 꿈을 다 알기나 한 듯
다 낚아채버린 꿰도차량은
한 점 때 묻지 않는
그 몸 위에 붓질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네
아티스트들처럼
고뇌의 깊은 눈에 빛을 발하며
궤도차량의 붓질을 멈추지 않았네
그들에게는
업무상 그림을 그리는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작품이라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소파의 화랑에
전시회 날짜를 적어 우리들에게
초대장을 띄워 보냈네
8
친구들아!
저들은 우리 모두가
저들의 그림 소재가 되었는지 몰라
싫든 좋든
어느 곳에서나
저들이 원 하는 것을
응하지 않으면
우리 몸을 캔퍼스로 삼고
그림을 그리지
이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은
없다고 하지 않았을까
캔퍼스가 된 우리 몸에
그려진 그림들을 바라보는
저들의 눈은
무엇을 노래 할까
지금 너희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후두둑 발등에 떨어지는데
교복 옷자락에 젖어 가는데
하얀 실내화의
그 위에 뚝뚝 떨어지는데
우리가 앉아 공부하던
그 책상 걸상 위에
연필과 필통과 가방 위에까지
아니 우리가
아무도 모르게 밤이면 써 나갔던
일기장 속까지
너희들의 눈물은
마른날 없이 떨어지고 있는데
저들의 눈은
면도날 보다 더 예리하고
유연함을 지니고 있어
캔퍼스에 그려진
우리 몸의 그림을 보면서
눈물도 날 법도 한데
가슴은 무쇠 덩어리인가 봐
저 무쇠의 벽 기둥에
촛불 한 자루를 걸자
저들은 왜 저렇게 울부짖고 있는지 몰라
이 촛불 한 자루는
한 점 먼지에 지나지 않을 텐데
이 먼지에 떠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무쇠 속에 있는 우리가
이 컴컴한 속을 비치고 있어서 일까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너희들은 살아서
우리의 이 아픔을 다 하지 못한
이 서러움에 몸부림치고 있구나
사람은 자기라는 생의 그림을
눈물이리라는 캔버스에
꿈의 물감을 묻혀
힘차게 붓질을 하면서
완성을 할 수 없는 그 그림을
눈물 나게 그리고 있는지 몰라
우리 몸이
캔퍼스로 그림 그려지던
그 그림들을
무쇠 기둥에 걸려 있는
이 앞에서
너희들은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구나
9
미선아! 효순아!
저 무쇠 기둥에
우리 시린 귀를 붙이면
우리가 소풍 가는 날처럼
은빛으로 들떠
재잘거림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풀잎에 깔리는 빗방울 소리 같은
우리들의 밀어를
다 건져 올릴 수 있을까
여울물보다 더 고운
우리들의 우정을
다 퍼 올릴 수 있을까
우리는 어린 나이였지만
우리들의 정신 높이는
어느 산 보다
높았다는 것을 모르리라
이 높은 곳에
촛불 한 자루 켜고 있는 것을
저들은 반미라고 소리치고 있다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이지
우리와 반미는
우리들의 정신의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의 일인데
그 사람들이 사자의 갈기를 세워
숨겨진 발톱을 드러낸다
미선아! 효순아!
저 숨겨진 발톱을 보아라
우리가 아직 어려
그림을 볼 줄 모른다고 하자
우리들의 정신의 높이는
어느 산보다 높은 것은
하늘이 준 그 눈이 있어서이다
너희가 이 미국을 아느냐
아직 가 본 적은 없지만
우리들은 너희 온몸을
캔버스로 삼고 그린 그림을 보고
안다고 말 하자
이것이 반미라 한다
저 작은 고사리 손에 쥐어져 있는
촛불 한 자루가 반미라 한다
아이를 업은 우리들의 엄마들의
손에 켜 있는 촛불은
국익에 큰 손실을 가져 온다며
이보다 큰 반미는 없다고 한다
딸과 같은 너희의
그 아픔을 이 촛불로
조금이라도 담고 싶은 일까지
11
사람이 한 자루 촛불이 되는 밤이네
이 촛불로 켜지기 전까지는
우리 서로 낯선 남남이었네
자신의 자존심을 별인들
높이 걸어두고 살았네
낮은 곳을 비쳐 주는 그 작은 촛불은
어느 마음씨 좋은
타인의 몫인 양 구경만 했네
사람이 한 자루 촛불이 되는
이 밤이 아름답네
이 밤 어둠의 끝을 잡고
조용히 비추고 싶네
12
하루 이틀 모였다가
그만 둘 줄 알았나보다
사람들은
우리는 우리의 내부 깊은 곳을
톡톡 두들기고 싶었다
놀라서 소리 나는 쪽을
사람들을 바라본다
촛불 하나가 켜져 있는 그곳을
[평화의 촛불] 이청리 시집에서